매일신문

[세사만어] 너무나도 불편한 진실

199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집단의 총수가 정치권과 정부에 던진 '돌직구'성 야유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왔다. 틀린 게 없는 말이지만, 온갖 대형 인명사고로 멘탈 붕괴 상황에 빠져 있던 당시 김영삼정부에게는 뼈아픈 소리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육'해'공 돌아가면서 대형 재난이 발생했다. 1993년 구포역 무궁화호 전복사고를 필두로, 아시아나 여객기 목포 추락,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대한항공 괌 추락 등 사고가 잇따랐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 흐른 지금 정치와 관료조직은 4류와 3류에서 벗어났을까. 불행히도 우리는 정치와 관료조직의 '역주행' 상황을 절감하고 있다.

19년 전 2류라고 자처했던 이건희 회장은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심근경색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이후 그는 신속한 병원 이송과 응급조치, 수술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심근경색에서는 발병 후 120분의 시간이 중요한데, 이 시간은 이 회장에게 생명을 구한 '골든 타임'이었다.

그런데 세월호의 골든 타임은 어떠했나. 사고 직후 해경은 멀뚱멀뚱 현장을 지켜보면서 민간 인양업체인 언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의 골든 타임을 관계 당국이 허무하게 흘려보내는 동안, 국민들은 인명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엉터리 방송 화면과 보도에 속았다. 세월호 침몰은 6'25 이후 가장 큰 충격과 슬픔을 국민들에게 가져다준 사고로 기억될 듯싶다. 국민들은 꽃 같은 아이들이 뒤집힌 배 속에 갇혀 죽어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고통을 겪었고 컨트롤 타워와 수습 능력의 부재, 부패 고리에 절망하고 있다.

G20 정상회담 개최나 영화 '어벤저스2' 촬영 장소 제공으로 경제 효과가 몇천억~몇십조원이라고 홍보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발생한 경제 마이너스 효과와 국격 하락에 대해 말하는 정치인'관료들은 보지 못했다. 여객선 침몰에 이처럼 허둥지둥하는 정부일진데, 만에 하나라도 원자력발전소 사고 같은 재난이 일어난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너무나도 불편한 진실 앞에 우리는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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