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크로아티아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전쟁과 관련된 것이지 않을까. 1990년대 중반까지 내전이 끊이지 않아 각종 세계 뉴스를 장식했던 이 나라가 어느새 아름다운 휴양지로 주목받고 있다.
크로아티아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이곳이 해안 낙원이자 수천 개의 섬으로 가는 관문, 그리고 최고의 와인 산지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사실은 해마다 발전하는 관광산업을 통해, 특히 최근에는 몇몇 텔레비전 프로그램들 덕분에 조금씩 알려졌다.
게다가 크로아티아는 문화적인 경이로움이나 신나는 액티비티를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의 여러 도시 중 두브로브니크는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영국 시인 바이런이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렀던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7세기에 세워져 13세기 무렵에는 베니스와 함께 지중해의 중심도시가 됐던 곳이다. 여러 번의 지진과 1991년 유고슬라비아 포격으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 오르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복원돼 크로아티아 관광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두브로브니크를 이미 오래전부터 알았을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미국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2, 3가 여기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킹스 랜딩'의 상당 분량을 이곳의 해안 요새에서 찍었다. 두브로브니크를 짧게 산책하기만 해도 촬영지로 간택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중세의 석조 건물, 반짝이는 대리석 거리,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가 있다. 게다가 구시가에선 현대적인 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판타지 왕국의 수도로 이보다 완벽한 곳이 있을까. 물론 중세 성이 남아있는 다른 도시들도 많지만, 그곳들이 이미 최신식 호텔들에 점령된 것에 비해 두브로브니크는 타임캡슐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과거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만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도 두브로브니크가 등장한다. 1990년대 말까지 그의 작품 중에는 유럽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았는데 그때 크로아티아의 풍경을 주로 담아냈다고 한다. 그중 '붉은 돼지'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두브로브니크가 끼고 있는 아드리아 해다. 한국에서는 물론 '꽃보다 누나' 방영 후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으리라.
구시가지 여행의 출발점인 필레문은 여행객으로 항상 붐빈다. 이 문은 중앙도로인 플라차 대로와 광장으로 연결되며 서쪽 끝의 작은 항구로 이어진다. 플라차 대로의 대리석 바닥은 닳고 닳아 햇살 아래 반질반질 빛이 난다. 특히 석양 드리운 저녁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실루엣과 어우러진 풍경이 환상적이다. 대로 양쪽으로는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무수한 샛길이 가지를 치고 있다. 그 좁은 골목길 사이로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이 빼곡히 들어서 여행객을 맞는다.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10여 곳의 박물관과 갤러리 중 특히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곳은 네 군데 정도다. 그중 필레문 바로 옆에 있는 14세기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가장 인기다. 이곳에는 1317년 만들어져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약국이 있다. 당시의 처방전과 약을 담았던 도자기, 고서 등을 전시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색적인 회랑과 중정도 인상적이다. 15세기에 지어진 도미니크회 수도원은 옛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북동쪽 문 가까이에 있다. 르네상스 회화와 3면 종교화인 트립틱, 스테판 1세의 성골함 등이 이곳 박물관의 자랑거리다.
두브로브니크의 황금기였던 15~16세기가 궁금하다면 렉터 궁전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이곳은 중세 두브로브니크 총독의 거처이자 집무실이었으며 감옥으로도 사용되던 곳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전쟁 사진 갤러리다. 저명한 전쟁 사진작가 및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관한 전시를 열고 있다.
구시가가 익숙해지면 성벽 투어에 나서보자. 크로아티아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두브로브니크 요새는 길이 2㎞, 높이 25m에 달하는 거대한 암석 장벽 안으로 구시가지 전체를 빈틈없이 감싸고 있다. 벽은 바다 쪽이 1.5~3m인 것에 비해 내륙 쪽은 6m로 훨씬 두껍다.
두브로브니크 관광은 성벽 걷기로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벽 위에 올라 할 일은 탁 트인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걷거나 작은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음료 한잔을 즐기는 것.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언덕과 마을, 바다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전망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게 된다.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은 민체타 성루다. 오래된 테라코타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구시가지와 그 너머로 푸른 아드리아 해, 로쿰 섬까지 한눈에 보인다. 주 입구는 필레문 바로 안쪽이며 동쪽 끝에 있는 플로체 문 옆에서도 들어갈 수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만 돌 수 있으며 한 바퀴에 2~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사면 여덟 군데 명소(성벽 투어 및 7개 박물관과 전시장)와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1일권 2만5천원 정도). 카드가 있으면 동반한 12세 이하 어린이까지 무료입장이다. 온라인으로 미리 구매하면 10% 더 할인되니 여러모로 경제적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날씨는 대부분 끝내주게 좋고 덕분에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점점 없어진다. 두브로브니크는 그 외양만으로도 아드리아 해 주변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만사태평 고양이들을 따라 구시가 골목길을 유유자적 걷는 것이 결국 가장 큰 즐거움이 된다.
두브로브니크는 취향과 상관없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상상하기가 힘든 곳이다. 푸른 아드리아 해 위로 떠 있는 구시가의 붉은 지붕은 언제나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니 말이다.
전 '대구문화' 통신원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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