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지만 아이들 때문에 죽을 수도 없어요."
이명희(가명'47) 씨는 하루를 23알의 약으로 시작해 수면제로 마무리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한시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희귀질환을 5년째 앓으며 주변 사람을 하나 둘 잃었다. 결국 남편도 떠났다. 명희 씨 옆에는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아들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엄마로서 아이들을 챙기지 못하고 아픈 모습만 보여줘 미안함에 매일 눈물을 흘린다.
"한창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엄마에게 투정도 부려야 할 나이인데 아픈 엄마 때문에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요. 그러다가도 엄마가 없으면 기댈 곳 없는 아이들 때문에 살아야지 하면서 매일을 버텨요."
◆한 번의 실패 뒤 찾아온 행복
명희 씨 집 거실에는 네 가족이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15년 전 아이들 아빠를 만나 결혼한 명희 씨. 자상하고 성실한 남편과 똑똑한 두 아들 덕분에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명희 씨에게는 지금 키우고 있는 아들 둘 말고도, 25세 된 딸과 군대에 있는 아들이 있다. 아이들 아빠를 만나기 전,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기르던 명희 씨는 3년 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술을 마시기만 하면 때리는 남편 때문이었다. 집을 나오기로 결심한 건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술을 마신 남편은 갓난아기였던 둘째를 벽에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그날 명희 씨는 집을 나왔고, 남편과 이혼을 했다.
친정어머니가 사는 방 두 칸짜리 임대주택에 얹혀살며 아이들을 키우다 지금 키우고 있는 두 아들의 아빠를 만났다. 아이들을 두고 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서울에 살던 명희 씨는 홀로 남편의 고향인 대구로 왔다. 갓 사춘기였던 아이들은 자신들만 두고 엄마가 떠났다는 사실에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내 잘못이죠. 애들을 두고 왔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죽고 싶을 만큼 극심한 고통
새로운 삶을 꾸리던 명희 씨에게 어둠이 드리운 것은 5년 전이다.
명희 씨는 갑자기 저리고 쿡쿡 쑤시며 아픈 오른팔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진통제 처방만 했고, 대학병원도 아픈 이유를 속시원히 알려주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까지 전전하길 5개월째, CRPS라는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병명은 알았지만 병에 대한 뾰족한 치료 방법은 없었다. 원인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CRPS는 교통사고, 수술 등 외상 이후 발병하는 경우가 많지만, 명희 씨는 이런 사례에도 속하지 않았다. 3개월 이내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경과가 좋지만, 명희 씨는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 시기마저 놓쳐버렸다.
고통은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할 정도로 심했다. 옷이 살에 스치거나 바람이 닿기만 해도 살이 찢겨나가는 듯한 통증이 동반됐다. 하루에 모르핀을 12번이나 맞아 약물 쇼크로 혼수상태에 빠지며 죽음의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다. 너무 아픈 날에는 병원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려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아이를 낳는 고통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출산을 네 번 했지만 그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어요.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의 고통
명희 씨에게 삶이 힘겨운 것은 극심한 통증과 함께 주변 사람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자상했던 남편도 버티지 못했다. 희귀병이다 보니 비급여 진료가 많았고 치료비는 불어나 수천만원의 부채를 지게 된 남편은 힘겨워했다. 매일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차라리 죽어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결국 지난해 초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고, 명희 씨와 아이들을 두고 떠났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끝나지 않을 고통 때문이다. 오른팔에서 시작된 통증은 왼팔까지 이어졌고, 매일 한 움큼의 약을 먹고 신경에 기계를 연결해 전기자극으로 고통을 줄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도 못 자요. 잠들면서 항상 생각하죠. 제발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지만 명희 씨는 삶을 포기할 수가 없다. 엄마가 떠나면 갈 곳 없는 두 아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수백 번 죽음을 생각하다가도 다시 살아가는 이유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착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다. 큰아들은 전교학생회장에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리더십 있고 공부도 잘한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도 도맡아 한다. 손의 통증 때문에 혼자서는 씻기도 어려운 엄마의 머리도 감겨준다.
철이 일찍 든 아들이지만 은연중에 하는 투정에 명희 씨의 마음은 찢어진다. 해주고 싶은 것은 많지만 기초생활수급자에 아직 장애등급을 받지 못하는 CRPS 환자라 25만원 월세도 다섯 달째 밀려 있다.
"얼마 전에는 지나가는 말로 친구가 유행하는 운동화를 신었더라고 하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혼자 울었어요. 밀린 월세 때문에 집에서 쫓겨날 처지라 과자 하나도 사주기 어려우니까요. 통증에 경제적 부담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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