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뇌를 잃었지만 서예는 나의 기쁨입니다. 남들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는데 입상까지 했으니까요."
사고로 한쪽 뇌를 잃고도 서예대전에 당당히 입선해 화제를 일으킨 주인공은 대구 대곡동에 사는 정원화(55) 씨다. 그는 최근 한국서예협회 대구시지회 주최로 열린 제21회 대구시서예대전에 훈민정음 한글 판본체로 입선했다. 대구 서예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3년 전 제지회사에 다니다가 공장기계에 머리를 크게 다쳐 우쪽 뇌를 잃었다. 그런 여파로 시력이 저하돼 물체를 똑바로 볼 수 없다. 기억력도 현저히 떨어져 금방 들은 것도 2, 3시간 뒤면 잊어버린다. 게다가 팔'다리의 움직임도 부자연스럽다. 서예를 배운 지도 5개월밖에 안 됐다. 하지만 그의 필체는 수준급이다.
송현수 한국서예협회 대구시지회장은 "대구시서예대전 이래 한쪽 뇌가 없으면서도 일반인 이상의 필체를 자랑해 깜짝 놀랐다"면서 "정 씨 작품은 단아'정갈할 뿐 아니라 선질이 건전하고 형태가 어그러짐이 없어 훌륭한 필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격찬했다. 한국서예협회 대구시지회는 대구지회의 경사인 만큼 20일 서예대전 입상자 시상식에서 정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월 부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전서예대전 한글 부문에서도 입선을 했다.
"서예에 집중하다 보니 건강을 회복하는 데 좋은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어두웠던 마음도 밝아졌고 몸도 한결 가벼워졌거든요."
그는 매일 대곡에서 도시철도를 이용해 월배역 부근에 있는 서예학원으로 나온다. 오후 1시쯤 학원에 도착해 4, 5시간은 꼬박 글씨 쓰기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하다. 손 떨림이 많아 왼쪽 손목을 오른쪽 손목 밑에 받쳐 천천히 붓을 놀리고 있다. 정상인에 비해 속도는 매우 느리다.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쉽게 피로해져 30분마다 휴식을 취한다. 하루에 6자 되는 글을 6장 정도 쓰면 글쓰기 연습이 모두 끝난다. 그가 처음 학원에 왔을 땐 아무도 서예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시력과 공간 지각능력이 떨어져 거리 조정이 안 돼 붓으로 선 긋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또 손떨림이 워낙 심해 붓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학원 담당 선생도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지 학습능력이 일반인보다 뛰어나 배움의 속도가 아주 빨랐다"고 감탄했다. 그는 요즘 한글 판본체를 겸해 궁서체도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한문은 획이 너무 많고 복잡해 배우기를 포기했다. 그는 6월 대구시 미술대전에도 서예작품을 출품할 예정이다. 그는 궁서체를 배우고 나면 서화 그리기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예전에 좋아하던 소설책을 읽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책을 읽어도 금방 내용을 잊어버려 앞뒤 연결이 안 된단다. 그는 도시철도를 이용하며 30분 정도 걷는 게 운동의 전부다. 사고 후 2년간 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지금도 매주 3차례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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