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도희야

사회 편견에 상처 난 어른, 멍 든 아이

아이는 길고양이 같다. 사람을 만나면 두려운 눈빛을 품으며 저 멀리 훌쩍 달아난다. 한참을 경계하지만 먹이를 주고 돌봐줄 것 같으면 금세 다가와 아양을 떤다. 고고한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고 질투도 한다. 귀여운 짓으로 사람을 즐겁게 하다가도 홀로 내버려두면 이상한 행동으로 두려움을 표출한다. 신비롭고 우아한 동물 고양이가 취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줄 때도 있지만 그건 소통 방식의 차이 때문에 생긴 오해이지 고양이가 음모를 꾸며서는 아니다.

외딴 바닷가 마을에 사는 14세 여자아이 도희(김새론)는 늘 혼자다. 친엄마가 도망간 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와 할머니(김진구)와 함께 살아간다. 도희에게 가정은 마음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잠시 비를 피하는 곳일 뿐이다. 아름다운 해변 절경의 섬 마을은 사방이 물인 출구 없는 지루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견딘다.

영화의 화두는 폭력이다. 아이는 늘 술에 취해 있는 용하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매질의 대상이고, 거친 욕을 입에 담고 있는 잔인한 할머니의 화풀이 대상이다. 같은 학교 아이들로부터 매를 맞고 왕따를 당해도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줄 어른 한 명이 없다. 동네 길고양이처럼 이리저리 치이고 온몸이 멍투성이여도 도희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학교에 나간다.

빠져나갈 길이라곤 없는 그곳에서, 마을 파출소장으로 오게 된 영남(배두나)이 도희 앞에 나타난다. 엘리트 경찰인 영남은 어떤 상처 때문에 이 어촌 마을로 좌천되었다. 영남은 용하와 마을 아이들의 폭력으로부터 도희를 보호해준다. 도희는 태어나 처음으로 구원자를 만난다. 그녀는 근사한 제복을 입고 있으며 힘센 남자 어른들도 멋지게 굴복시킨다. 어느새 도희에게 영남은 세상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리고 영남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주인을 맞이한 고양이처럼 도희는 영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춤을 추고, 자신의 곪아 터진 상처를 봐주길 바라고, 지친 몸을 꼭 안아주길 원한다.

영남은 깊은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 그녀는 한가롭지만 일상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이 낯선 마을의 위태로운 분위기를 감지하고 용하와 대립한다. 용하는 외국인노동자를 조달해 오고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는 숨은 권력자다. 마을을 유지하길 원하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그의 폭력은 용인된다. 불법 행위로 인해 체포될 위기에 처한 용하는 우연히 목격하게 된 영남의 비밀을 폭로하며 그녀를 위기에 빠뜨린다. 영남과 헤어져야 할 때가 된 도희는 영남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한다.

이 영화는 버림받은 아이, 외국인 노동자, 남다른 여자 등 사회의 편견의 시선 아래 있는 사람들이 겪는 일상적 폭력을 보여준다. 출구 없는 어촌 마을은 우리 사회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적 공간이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롭고 고요하며 체계가 잘 짜여서 공동체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듯하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불합리와 위협으로 가득하며, 부당한 일을 보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을 감는 집단 이기심이 팽배하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비밀이 발각된 불행한 여자와 불쌍한 아이의 사연이 아니라,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정의에 눈감고 비이성에 동조하다가 곪아 터져서 엄청난 비극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다.

'도희야'는 현재 열리고 있는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세계인들에게도 선보인 상태다. '마더'의 봉준호, '황해'의 나홍진, '아리랑'의 김기덕 등 기라성 같은 감독들과 어깨를 견주게 된 신예 정주리 감독의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의 연기 앙상블은 훌륭하다. 김새론에게 '아역배우'라는 타이틀이 이제는 어색하다. 그녀는 당당한 '여배우'다. 글로벌 연기자가 된 배두나의 깊어진 내공을 확인할 수 있으며,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손색이 없다. 코믹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독한 악역을 연기한 송새벽의 연기 변신 또한 눈부시다.

결말부의 아이와 여자의 선택은 논란거리이다. 도덕론적 시각에서 볼 때, 동의하기 쉽지 않은 그녀들의 선택은 고요한 영화적 톤에 일대 폭발력을 발휘한다. 그렇지만 충분히 감동적이어서 자칫 그들의 선택이 올바른 것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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