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여는 효제상담뜨락] 기러기아빠를 만드는 아내의 이유

가끔은 기러기아빠의 모습을 한 중년 남성들이 필자의 상담뜨락에 앉는다. 이들의 고충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의 재미없고 공허한 결혼생활이 그려진다. 혀를 차면서 공감하기도 안쓰럽지만 주부처럼 습진 걸린 손이 되도록 살림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과 한없이 리필되는 커피자판기처럼 돈을 짜내야 하는 고통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게다가 아내가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며 더 큰 도시로, 더 큰 나라로 훌쩍 보따리를 싸서 날아간 사연부터 그 이후에 자신이 심리적으로 홀로서기해야 하는 외로움이며, 타국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소식이 줄어들면 불안을 느끼고 무력해지기까지 하다는 정신적 고통을 털어놓는다. 그렇지만 정말 힘든 것은 자신도 가족에 대한 정을 포기할 때쯤, 희한하게도 평소엔 본 척도 안 하다가 돈이 필요하다거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심부름에 가까운 초라한 역할이 있을 때 다급하게 찾는 것을 반복하니 가족관계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떨 때는 가족처럼 대하고 어떨 땐 남처럼 방관하는 아내의 본 마음은 무엇인지 도리어 필자에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필자는 되물었다. 어쩌다 기러기아빠가 되었느냐고. 그가 대답했다.

"제가 그렇게 반대했건만, 아내의 단호한 생각을 이길 순 없었어요. 왜냐하면 아내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고 떠나있어야 하는 이유가 오직 아이들의 학교와 성공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진지한 태도에 필자는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말했다. 몇몇 기러기아빠들의 아내를 만나본 얘기를 말이다. 그들은 자녀들의 조기유학을 통해 미련이나 아쉬움 없이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훌쩍 떠난 두둑한 배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미없고 힘든 결혼을 파기하는 건 복잡하고 새 결혼보다 더 힘들다는 걸 알았지요. 이때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아이 공부 명목이었지요. 만약 남편이 정말 필요한 존재였다면 그렇게 오래 그를 방치하고 아이만 보는 절름발이식 결혼생활은 선택하지 안았겠지요."

필자가 내담자의 질문에 시원스럽게 소리 내어 말하는 대신 속으로만 말한 것은 아직도 이 기러기아빠들은 아내의 준비되고 차가운 마음에서 시작된 기러기아빠를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직면할 준비가 안 된 단계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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