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 속에서-중국 동포 한국 생활기] 감사함에 연연하지 않을 때까지

일요일 아침이면 공장 뒤 산에 오른다. 이 계절의 휴일 스케줄은 산행으로 꽉 차 있다. 매트 공장에 나가면서부터 산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이 봄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묘목 한 그루 심고 밭의 채소 가꿈에 참여하고 싶어진다. 봄이 좋은 것을 싱싱한 봄 같다는 청춘이 지나 불혹의 나이에야 안다. 인생도 다 지난 과거를 회오하고 안쓰러워할 때가 많다.

양충이 껍질을 바르듯 무거운 옷들이 하나둘 벗겨져 내리는 날이 겨울이 가면 결국 오겠지만 오래 기다렸을 것이다. 혹독한 추위와 아픔이 있는 겨울이 헌 옷차림인 자신을 버리고 봄에게 따뜻한 새 옷을 입혔다. 나는 천행이 하사한 자연 순리를 사랑한다.

아무리 산이 감사를 받을 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산을 많이 찾아가는 만큼 자연에게 베풀 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봄을 맞은 사람은 겉으로는 새롭고 아름다운 척하지만 속은 겨울처럼 차가운 그대로인 경우를 더러 본다. 온갖 자기 잇속을 챙기려고 아득바득 애쓰기도 하고 남을 헐뜯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은 듯 폄훼한다. 그러다 자기한테 불리하면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봄이 되었지만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겨울 나무처럼 지도층에 있는 사람은 이간질과 술수만 늘어 여기저기 거미망을 치고, 돈이 있는 사람은 더 가지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린다. 착한 사람은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고 원칙대로 자기 몫을 받지 못해도 원망하지 않고 살아간다. 아마 착한 사람이 봄날의 산을 닮은 것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나는 함께 짝을 이뤄 일하는 동료 아저씨한테 불만이 있었다. 병약하고 왜소한 아저씨라 늘 내가 더 일하는 게 불만이었고 하필 파트너가 된 것에 대해 투정했다. "자네 고생 많았어." 이런 수고했다는 한마디 안 해주는 것마저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나는 늘 다른 사람들과 흉을 보고 다녔다. 흉을 받아주는 사람들과 찧고 까불고 하다 보면 내 맘이 처음엔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아니었다. 배가 소화되지 않은 것처럼 더부룩했다. 흉을 하고 나서 그 아저씨가 돌아올 때면 괜히 들키지는 않았나 싶어 입을 딱 다물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더 불편했다. 그런데도 습관처럼 내 입은 묵직하지 못하고 또다시 의혹을 품었고, 혹 아저씨가 눈치를 차리고 기분 나빠하거나 혼자서 외롭게 일하는 작은 뒷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도 한줄기 시린 꽃샘추위가 지나갔다. 남을 미워하는 일도 헐하지 않았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속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남에게 아픔을 주면 나도 아픈 것임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문득 나는 봄 산 앞에서 나를 돌아본다. 그동안 몸과 마음이 병들어 무조건 내 욕심만 채우려 했던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받고 싶다는 욕심이고 기다림이었던 거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연연하지 않는 봄 산 앞에서 동료 아저씨와 또 다른 사람한테 금이 가지 않고자 나도 마음을 비운다. 겨울이 봄을 위해 비우듯이.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만 산은 많은 것들을 거저 주는데도 이유가 없다. 주고 싶어서 주는 산, 그리고 그것을 나누어 가지는 나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다. 우리 사이에는 감사하다는 말들이 필요 없다. 그래서 다들 욕심이 없는 산을 좋아한다.

봄 산처럼 풋풋하고 넉넉함을 마음에 심고 싶다. 자신이 헛되고 부끄러운 줄 모르면 산의 속성에 위배되고 천형을 받을 것 같다. 봄 산 앞에서의 반추에 마음이 맑아진다. 이제 생채기가 난 생을 조금이나마 아물릴 수 있을 것 같다. 여름이 와도 산을 오르겠지만 이 봄이 가기 전에 오늘 산을 오른다.

류일복(중국 동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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