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 현장기록 112] 허위 신고, 앙~돼요!! 진짜 신고는 돼요~돼요~!

경북청 112종합상황실 팀장으로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지난 2월의 일이었다. 오전 11시쯤 접수받는 직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직감적으로 '큰 사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입술이 타들어갔다.

신고자와 통화하는 직원 옆으로 가서 내용을 알아보았다. 신고 내용은 경북 경주의 한 대학생이 "오전 5시경 경주 성건동 경주국밥 뒤쪽 골목에서 중국인 5명에게 차량으로 납치되어 황성동 쪽 주공아파트 부근 창고 같은 곳으로 끌려가 전봇대에 테이프로 묶여 있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령실은 오전이 좀 한가한 편이어서 우리끼리는 오전 시간을 '골든 타임'이라 부르며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오전부터 긴급 사건이 들어오니 오늘은 '제대로 걸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아무리 감시가 소홀하다지만 5명이 감시하고 테이프에 묶인 상태에서 도망쳤다는 것이 상당히 의아했고 여자도 아닌 남자 대학생이 신고한데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술도 좀 취한 것 같아 허위 신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1건의 신고도 소홀히 할 수 없고, 작년 경주경찰서 근무 경험으로 보아 경주 성건동 지역이 유흥가인데다 외국인의 유입도 많은 탓에 우범지역으로 인식되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고한 사람에게 바로 피해자 안전을 물으니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다행이었다. 경찰관 생활을 하며 제일 안타까운 것은 범인을 잡아도 피해자가 다치거나 죽는 것이다.

국민이 위험한 사건에 처했을 경우 우리 상황실 경찰관들은 신고를 접한 순간부터 종결될 때까지 피가 마른다.

경찰관이 아무리 고생을 해도 이런 경우엔 자책감이 들어 고개를 들 수가 없고, 심지어는 '경찰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다음 피해자 위치를 물으니 술을 좀 많이 마셔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자 동의를 받아 위치 추적을 실시했고, 위치 파악 후 경찰을 출동시켰다. 경주경찰서는 비상을 발령하는 등 모든 경찰관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무전을 들으면서 초초해 하며 현장 경찰관들이 조치를 잘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관할 파출소 순찰차가 피해자를 만났다는 무전이 들렸다. 피해자는 안전하다는 무전도 들렸다. 마치 내 자식이 안전한 것처럼 우선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후 한동안 무전이 없어 사건 내용이 궁금해질 무렵,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납치 감금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허위 신고였다는 것이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허위 신고가 대부분 그렇듯 이 사건도 처음부터 의심이 들긴 했지만 막상 허위 신고로 밝혀지니 '그동안 고생한 경찰관 입장에서 화를 안 내는 것이 더 이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건 내용을 파악해 보았다. 신고자인 대학생은 여자 친구와 싸우고 홧김에 허위 신고를 했다고 한다.

우리를 고생시켰으니 강력하게 처벌이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에서 처리 결과를 알아보니, 경주경찰서에서는 대학생이 여자 친구와 헤어져 괴로워 술을 먹고 우발적으로 신고한 점과, 초범인데다 신고 후 바로 자백한 점, 깊이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훈방 조치했다고 알려왔다. 경주서 직원들도 나처럼 짜증이나 화가 났겠지만 대학생을 직접 만나보고 그 학생이 측은하여 훈방하였다니 더 이상 어쩌랴!

지난해 경북청 총 신고 기준으로 허위 신고는 아주 미미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허위 신고는 건수의 문제가 아니다.

허위 신고라도 그 건을 처리하는 데에 많은 경찰관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막대한 치안력이 낭비되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점은 정말 위험에 처한 시민이 도움 받을 기회를 허위신고가 빼앗아 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허위 신고는 범죄로 간주하여 처벌하고 앞으로 더욱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의든 장난이든 허위 신고 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유행어처럼 말이다.

"허위 신고, 앙~돼요!! 진짜신고는 돼요~ 돼요~!"

퇴근 후 집사람과 오늘 얘기를 안주 삼아 소주라도 한잔하며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

이정원 경북경찰청 112종합상황실 경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