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반 읽어주는 남자] 윤종신-9집 그늘

요즘 TV 예능 MC로 맹활약 중인 윤종신. 사실 그는 1990년대 전후로 015B라는 그룹에서 객원 보컬로 활동했고, 1991년 1집을 발표해 올해 초 15집까지 내놓은 20여 년 관록의 뮤지션이다.

윤종신표 음악은 두 갈래다. 하나는 발라드다. 또 하나는 그루브(댄스 장르를 포함해 신나는 음악의 총칭)다. 발라드 가수로 시작한 그는 나중에 그루브에 눈을 떴다. 그 본격적인 시작점이 9집 그늘(2001)이다.

윤종신은 이 앨범 이전까지 사랑의 환희로 시작해 이별의 아픔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 구조의 앨범을 주로 내놨다. 예를 들면 5집 愚(우'1996)는 당신을 만나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노래하는 '환생'으로 시작해 다른 여자와의 결혼식에서 옛사랑을 떠올리는 '바보의 결혼'으로 끝맺는다.

그러다 9집에서 처음으로 "사랑이고 뭐고 그냥 여행이나 떠나자"고 외친 것이다. 팥빙수, 해변 무드송, 바캉스 마니아 등 수록곡 이름만 봐도 여름휴가용 앨범이다. '더 브래시스'라는 일본 브라스 연주팀을 기용해 찰진 리듬감을 가미했다. 앨범 마지막 곡인 '보고 싶어서'가 애틋한 발라드이긴 하지만. 윤종신은 이전부터 종종 그루브를 시도하긴 했다. 4집 공존(1995)에 실린 '내 사랑 못난이' 등 앨범마다 무채색 발라드 사이에 색깔 있는 그루브 한두 곡을 실었다. 따라서 그루브를 전면에 내세운 9집은 윤종신이 그루브 작곡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작품으로 봐도 되겠다.

9집 이후 윤종신은 컬러풀한 외도를 펼친다. 3차례에 걸쳐 영화 OST 작업을 하며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다. 라이터를 켜라 OST(2002), 불어라 봄바람 OST(2003),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OST(2003) 앨범이다. 1970년대 미국 블랙스플로이테이션(흑인 주인공이 나오는 범죄 액션물) 영화에 나올 법한 경쾌한 퓨전 재즈 스타일 '더 스펙타클 라이프', 베이스와 브라스 섹션의 쫀득쫀득한 궁합이 일품인 '국가대표', 브라질 삼바 리듬을 세련되게 소화한 '원더우먼' 등이 귀에 꽂힌다.

이제 윤종신은 서정적인 발라드부터 신나는 그루브까지 희로애락의 감정을 능숙하게 표현하는 뮤지션이 됐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킨 걸까. 1집부터 그의 모든 앨범을 수집한 팬으로서 두 가지를 추정한다. 하나는 라디오 디제이 경험이다. 윤종신은 2003~2008년 MBC FM4U '두 시의 데이트'를 진행했다. 시청자들이 보낸 세상 온갖 사연을 접하며 노랫말은 물론 작곡 스타일도 다양해졌으리라.

또 하나는 동료 뮤지션 하림이다. 하림은 2001년 1집 다중인격자를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숨은 국내 흑인음악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하림은 윤종신의 2000년대 이후 앨범에 거의 붙박이로 작곡, 연주, 코러스로 참여한다. 그러면서 하림이 전수해 준 흑인음악의 리듬감이 윤종신 그루브에 바탕이 됐음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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