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은 아주 비싼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 줄 알았다. 사진작가 윤길중의 사진을 만나고서야 사진은 카메라가 아니라 마음으로 찍는다는 걸 알았다.
윤길중의 사진 속에선 바람이 살아있다.
그의 마음속에 술렁이는 바람이 그의 사진 속에는 온전하게 담겨 있었다.
윤길중 사진전 'picturesque-詩畵' 서울 전시에 이어 28일부터 시작되는 대구 전시(대구문화예술회관)를 앞두고 그를 만났다.
전통 한지 위에 프린트한 그림 같은 그의 사진들은 마치 꿈속의 풍경들처럼 몽환적이었다. 안개 낀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는 바람이 생생하게 내 마음속으로도 휘 불어왔다. 그 바람결에 부러진 것인지, 늪 가장자리에 쓰러진 나무 한 그루는 무한경쟁에 내몰리다 멈춰 선 윤길중(53)의 분신이었다.
그는 전업사진작가가 아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밴드' 회사를 경영하는 기업가다. 그가 사진에 빠진 것은 5년 전 어느 날 암에 걸려 잘나가던 삶이 잠시 멈추면서부터였다.
갑상선암에 걸린 그는 수술을 마치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병원문을 나서면서 그는 그 길로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일주일 동안 무작정 쏘다니면서 카메라를 휘둘러댔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카메라는 그때 나의 유일한 치유의 도구였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라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었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봤고 항암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의 사진 속의 나무는 정물화 속의 그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가지가 부러지고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상처입은 영혼이었지만 여전히 바람에 흔들렸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우리였다.
"안개 자욱한 벌판 곳곳에 상처입은 나무들을 잊을 수가 없다… 나무들은 뿌리를 내린 땅과 바람이 떠도는 하늘 사이에서 꼼짝없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간다. 나무들도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가까이 붙어 있는 나무들은 서로 한쪽을 내주고 반대쪽으로 가지를 키워나간다… 그런데 내가 찾아가는 곳엔 쓰러진 채 살아가는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다. 늪이라 지반이 약해서일까. 뿌리를 드러낸 채 몸통은 옆으로 누워 있지만 잔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자란다. 처음에는 안타까운 맘으로만 바라보았지만 쓰러진 나무들은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다. 최소한 바람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가지 않겠는가. 나도 살아오면서 경쟁에서 밀려 낙오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고 살아왔다. 경쟁에서 비켜나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쓰러진 나무에서 배움을 얻었다."
사진을 찍게 되면서 처음에는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풍경을 찍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러지고 상처 난 나무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뿌리가 약한 늪 속에서 자라다가 바람에 쓰러진 나무도 다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한 번 쓰러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지혜를 배우게 됐다. 나무와 대화하면서 스스로 치유되는 묘한 체험을 한 셈이다.
그때부터 그의 사진은 장애가 주된 소재였다. 장애인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노들 야학'에 가서 중증장애인들의 일상을 담았고 비가 내리고 바람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화호에 달려가 나무를 찍었다.
"장애인들을 촬영하면서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분노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대상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또한 쓰러져 있으면서도 꿋꿋이 생명력을 보여주는 나무들도 그 중 하나였다. 우리도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러진 나무도, 암으로 좌절했던 나도 또 다른 희망으로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윤길중은 오는 7월 말 강원도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국제사진전에 초대를 받았다. 동강 사진전에는 서울 북아현동 재개발지구의 빈집들을 배경으로 한 셀프 퍼포먼스 사진을 통해 그의 기억 속에 각인돼 있는 '아버지의 잔영'을 소름끼칠 정도로 강한 흑백 톤으로 표현한 사진들을 내놓을 작정이다.
-어쩌다가 배병우 씨의 소나무 사진같이 강건하거나 튼튼하고 예쁜 나무가 아닌 바람에 흔들리고 부러진 나무를 찍었나.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늪에서 겨우 살아남은 그러나 바람에 휘둘리는 나무를 통해서 말이다. 첫 사진전시회인 '3인 공동 사진전'에서는 예쁘고 소장하고 싶은 사진만 찍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우리 인생과 너무 흡사했다. 쓰러지고 나서도 살아있는 나무는 우리 인생하고 다를 바 없다. 경쟁만 하고 살아오면서 한 번 쓰러지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나무들을 보니까 쓰러져도 새롭게 살아나는 등 새로운 인생이 있었다. 이 나무들과 참 많은 대화를 했다. 사진 속 나무들마다 각각 다른 내용들이 있다."
-계속해서 이번 나무 같은 약자, 장애인 시리즈를 계속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장애'를 소재로 사진을 찍어 온 작가가 한 사람도 없다. 내 주제는 장애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 이후 트라우마에 빠진 것도 일종의 정신적 장애다. 나중에 분야별로 사물을 대상으로 장애시리즈 작업을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현대인의 정신적 장애,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장애를 사진으로 표현해내고 싶다. 스트레스든 뭐든 현대인은 장애인이라고 생각한다."
-중증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고 사진전도 열었다.
"고교 선배가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야학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장애인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정상인', '보통사람'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한다. 중증장애인이지만 그들 스스로는 불편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죽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인식이 없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과 함께 소통하고 놀아주면서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그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주 싫어한다.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더 비틀어진다. 그래서 그들이 웃는 모습, 아주 잘 나온 모습을 찍어 프린트해서 가져가면 좋아했다. 그렇게 한 사람씩 그들과 친구가 됐다. 사진을 안 찍겠다는 장애인이 딱 한 사람 있었는데, 어느 날 그분이 증명사진을 찍어주면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주민등록증을 분실했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는 사진관이 없었던 것이다. 증명사진을 찍어주고 나서 그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분들은 평소에도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내가 찍은 그분들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서 일일이 선물했다. 그런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의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사업상 술을 마시고 골프를 쳐야 했는데 장애인 사진을 찍으면서 골프 회원권과 골프채를 처분했다. 평소처럼 골프를 하면서 장애인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진을 하면서 풀 한 포기 바람 한 줄기를 다시 보게 됐다. 사진은 내 인생을 바꿨다."
-나무사진을 보면서 상처를 치유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당신은 승승장구 살아온 인생이다.
"자세히 알고 보면 내 안에 그런 상처들이 많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장남으로서 빚만 물려받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기업에 들어가서도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어렸을 때 '전셋방'을 전전하면서 무려 서른한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그런 트라우마와 상처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서서히 치유가 됐다. 그게 사진의 힘이다."
-이번 전시는 전통 한지에 사진을 프린트했다.
"사진은 대상을 그냥 찍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철학, 인문학적 요소가 들어가지 않으면 사진이 아니다. 우리 한지로 사진작업을 하는 이정진이란 작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도 그래서 한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국내에서 전통 한지를 연구하는 장인을 찾아 새로운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나의 나무 사진을 전통 한지에 프린트하면 몽환적인 느낌이 날 것 같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
-사업가이면서 사진작가다. 앞으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빠직업을 이제는 1초의 망설임 없이 '사진작가'라고 쓴다. 사업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사진은 너무나도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내가 하는 작업은 장애와 상처의 치유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되거나 소외된다고 해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인생이 있다. 나도 이제 비켜난 삶을 사는데 그것을 사진을 찍으면서 깨달았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성장 일변도로,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온 것을 반성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돈과 성공 위주의 가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행복한 삶에서 돈이 없으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으냐. 앞으로 저의 관심은 여전히 장애다. 환경파괴도 우리가 만들어낸 자연의 장애다. 찍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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