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미혼모 쉼터 미혼모들

이것저것 일부러 행사 찾아 나서지만 밤이 되면 집 생각에 눈물이…

혜림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가빈(17) 양이 아이를 위탁가정으로 보내기 전 아이를 안은 채 밖을 보고 있다. 아이와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하는 가빈 양의 마음과 달리 바깥 날씨는 맑기만 하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혜림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가빈(17) 양이 아이를 위탁가정으로 보내기 전 아이를 안은 채 밖을 보고 있다. 아이와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하는 가빈 양의 마음과 달리 바깥 날씨는 맑기만 하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가족과 함께하는 날들이 많은 5월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혼모, 기러기아빠, 가출 청소년도 그들이다. 이들에게 5월은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달'일 수도 있다. 가족이 곁에 없어 외롭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보낸 이들의 5월이 어땠는지 들어봤다.

◆미혼모쉼터 미혼모들…이것저것 일부러 행사 찾아 나서지만 밤이 되면 집 생각에 눈물이…

"오히려 바깥보다 혜림원 안에서 덜 외로운 것 같아요. 비슷한 처지의 사람끼리 이야기가 통하니까요."

미혼모쉼터인 대구혜림원에 입소한 지 4개월째인 가빈(가명'17) 양과 일주일이 넘은 지은(가명'22) 씨는 나름대로 바쁜 5월을 보냈다. 어버이날맞이 카네이션을 만들고, 함께 생활하는 미혼모들과 영화도 보고 날씨가 좋으면 외출도 나갔다. 가빈 양의 아기는 이달에 백일을 맞기도 했다.

미혼모들은 5월을 정신없이 보내긴 했지만 정작 돌아서면 외로움이 밀려온다고 고백했다. 지은 씨는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 많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고 뒤돌아서면 아이에 대한 걱정,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걱정이 몰려오면서 또다시 마음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다 보니 5월에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부모님이다. 3주 뒤 출산 예정이라는 지은 씨는 어버이날 전날 입소했다. 출산을 앞두고 부모님과 연락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옆에 같이 있는 것만 못하다. 지은 씨는 "출산할 때 부모님이 오실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떨어져 있는 기간이 얼마 안 되는데도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은 세상의 편견과 차가운 시선에 늘 외로운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차라리 바깥보다 혜림원 안에서 생활하는 게 덜 외롭다고 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외로움이 덜어지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 외로웠다. 가빈 양은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 신분이라 실습할 때 임신한 몸으로 견디기 힘들 때도 많았다"며 "이럴 때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가빈 양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현재 가빈 양의 아이는 다른 위탁 가정에 맡겨진 상태다. 아버지와 합의하에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기를 맡긴 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나 마음이 쓸쓸해진다. 가빈 양은 "아이를 위탁 가정에 보낸 뒤 바깥에서 아기용품을 보거나 어린아이가 지나가는 것만 봐도 아이 생각에 견딜 수 없을 때가 많다"며 "그래서 밖에 나가는 일도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빈집이 더 휑한 기러기아빠들…수화기 너머로만 확인할 수 있는 사랑 "여보 보고 싶소"

김형국(57) 아양아트센터 관장은 7년째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7년 전 사업을 위해 부인이 몽골에 가면서 자녀도 함께 데리고 갔다. 그 뒤로 부인과 딸이 가끔 한국에 들를 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이달 초에도 세 식구가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족이 해외치고는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자주 찾아오지만 그래도 홀로 남아있는 외로움은 알게 모르게 다가온다. 김 관장은 "술 한잔하고 들어온 날이면 가족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며 "그럴 때마다 짧게라도 아내와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안부를 확인할 때도 있다.

가족이 자주 오고 갈 수 있는 김 관장의 경우는 행복한 기러기아빠에 속한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데다 경제적 문제까지 겹친 기러기아빠의 외로움은 더 심각하다. 박모(49) 씨는 부인과 자녀를 5년 전에 캐나다 밴쿠버로 보냈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지만 아버지로서 박 씨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심각했다. 당장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는 게 문제였다. 뼈 빠지게 돈을 버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도 모자라 결국 살던 집을 팔고 월세 20만원짜리 원룸에 홀로 살고 있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가끔씩 국제전화로 부인과 자녀의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국제전화 요금이 비싸다는 이유로 이것마저 자제하게 된다.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비행기표를 살 돈이 없다.

지난해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기러기아빠 생활과 딸의 유학 문제 등으로 갈등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치과의사의 소식이 박 씨에게는 남 이야기 같지 않다. 박 씨는 "외로움을 달래는 것도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며 "돈이 들까 봐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인생에 낙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따뜻한 가족'을 잃어버린 가출청소년들…엄마의 손길이 그리운 아이일 뿐인데, 날 포기하신 걸까요

대구중장기청소년쉼터에 머무르고 있는 옥주(가명'17)는 검정고시 공부를 하며 5월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가출을 밥 먹듯이 자주 했다"는 옥주에게 집은 '어머니가 너무 심하게 잔소리를 하는 곳'이며 '나와 살다 힘들면 결국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옥주는 혼자가 너무나도 익숙하다. 검정고시학원에 다니지만 그곳에서도 친한 사람은 없다. 옥주는 "같은 반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친해지면 좋겠지만 말을 쉽게 못 걸게 된다"며 "쉬는 시간이면 차라리 바깥에 나와 담배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맞아 함께 지나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옥주는 "가족들은 날 포기한 것 같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을 지켜보는 대구중장기청소년쉼터 전지열 팀장은 "쉼터의 친구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명절 다음으로 힘들어하는 시기가 5월"이라고 말했다. TV에서는 가족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자신들은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쉼터로 오는 가출 청소년들 대부분은 부모의 이혼과 가난 등으로 가정이 해체된 경우가 많아 정작 돌아갈 곳이 없는 경우도 있다. 쉼터 선생님들은 5월을 맞아 부모님을 대신해 선물도 주고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부모님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 못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전 팀장은 "가끔 쉼터의 청소년들이 밤늦은 시간에 자신의 외로움을 몰래 털어놓으며 울기도 한다"며 "겉으로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을 닫은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가족의 정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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