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울지 말고 꽃을 보라

울지 말고 이 꽃을 봐라, 그리고 저 바위도. 산다는 것에 의미 따위는 소용없어. 장미는 장미답게 피려고 하고, 바위는 언제까지나 바위답겠다고 저렇게 버티고 있지 않니. 그저 성실하게,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게 제일이야. 그러다 보면 자연히 삶의 보람도 기쁨도 느끼게 되는 거야. 너무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어. 이제 또 다른 꿈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정호승의 '울지 말고 꽃을 보라' 중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기쁨도 들었고 슬픔도 들었고 아쉬움도 들었고 애달픔도 들었고 한숨도 들었고 상처도 들었고 꿈도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만나기보다 우연히 만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야 더 진솔한 마음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처음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도 삶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삶이 만들어가는 풍경 속에서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 풍경을 통해 현재의 나를 반성하고 미래의 나를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삶이 힘들고 무거워서 행복하지 않다는 답변만 들리는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겉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아팠습니다. 아파 보이는 사람은 더 아팠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아팠고, 부유한 사람도 아팠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아팠고, 부유한 사람은 가난해질까 봐 아팠습니다.

우린 지금 왜 삶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일까요? 파란 하늘과 하얀 민들레가 저리도 예쁜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간다고 하는데 왜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긍정심리학이 이렇게 대한민국의 서점을 채우고 있는데 왜 우린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싶은데 왜 우린 지금 불안한 것일까요? 아픔을 위로하는 치유의 멘토들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그 멘토들이 쓴 책이 서점에 넘쳐 나는데도 왜 우린 여전히 위로받지 못하나요?

사람들을 만나 그 이유를 듣고 싶었습니다. 불안하고 아픈 것이 현재의 풍경인데 그들에게 그런 풍경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듣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이유도 모르고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말하고 나니 딱 맞는 표현입니다. 견디고 있다는 말. 그렇습니다. 그들은 견디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그들은 대부분 외로움으로 인해 아팠습니다. 지금 더불어 살고 있다는 사람들이 진정 '곁'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자본이거나, 이익이거나, 조건이거나, 적이거나, 경쟁자이거나, 아픔이거나, 고통이거나. 그랬던 것입니다. 함께 울어주고, 함께 걸어가고, 나란히 손잡아주는 진정한 '곁'이 필요한데 그런 존재가 그들에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간절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곁'입니다. '곁'은 평범합니다. 장미는 장미인 채로, 바위는 바위인 채로 살아가도 살아가는 그 자체를 의미 있는 삶으로 인정해주는 그런 존재가 '곁'입니다. 미꾸라지가 용이 되기는 쉽지 않은 시대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미꾸라지가 용이 된다면 생태계는 완전히 끝장나겠지요. 미꾸라지로 하여금 용이 되기를 강요하지 않는 사회, 미꾸라지로 살아도 행복한 사회, 그건 미꾸라지의 삶을 살아도 행복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곁'이 존재할 때 가능한 사회입니다. 울지 말고 꽃을 보세요. 바로 그 꽃이 당신의 '곁'입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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