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조심하라는 말을 덜 할 수 있을까?

살면서 '조심해라'는 말만큼 많이 듣고, 많이 한 말이 또 있을까. 어릴 적 어머니는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니셨다. 등굣길엔 "차 조심해라" 하셨고, 여행길엔 '음식' '잠자리' '소지품' 등 온갖 것에 '조심'이란 말을 붙여 나를 긴장시키셨다.

그때마다 "알았다"며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이 말을 이제는 내가 내 아이에게 하고 있다. 아이가 1박 2일짜리 캠프를 간다며 참석 여부 통지서를 가져왔을 때 펜을 든 나는 좋지 못한 생각을 떠올리며 망설였고, 출발한다며 집을 나설 땐 "조심해라"는 말을 되풀이했었다. 그런데도 얼마 전 아이가 그네에서 떨어져 왼쪽 팔꿈치 부근의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아이의 부주의에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라며 조금은 원망 섞인 속앓이를 했다.

어머니께 듣고, 또 내 아이에게 전달된 '조심해라'는 말은 비단 우리 가족의 가훈만은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조심'은 집 밖에서도 강요받았고, 강조했던 상용어였다. 초등학교 땐 불조심'물조심 등 때가 되면 포스터나 표어를 제출하며 새겨야 했던 말이며,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무수히 많은 상황에서 선배에게서 듣고 후배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조심해라'는 말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왜 이토록 수없이 강조돼 왔고, 강조되고 있을까.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아서? 아니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불안 덩어리가 곳곳에 널려 있어서? 지난 일과 경험을 되짚어보며 '답지'에 이렇게 써봤다. 조심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생명 유지법'. 그래서 덕담을 주고받듯 하는 말. 하지만, 아쉽게도 외부적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는 그다지 힘이 없음.

1995년 4월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듣고 집을 나섰던 중학생들을 포함해 시민 101명은 상인동 지하철공사장의 굴착 실수로 새어나온 가스가 폭발해 목숨을 잃었다. 2003년 2월에는 지하철 대구 중앙로역에서 한 방화범의 소행으로 192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성수대교(1994년)와 삼풍백화점(1995년) 붕괴사고도 많은 희생자를 냈다. 올 들어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와 세월호 참사까지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이 끔찍한 일들이 개인의 조심과는 무관하게 누군가의 부주의로 일어났다.

이런 경험의 축적은 우리를 불안케 했고,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했다. 그러니 비록 불가항력일지라도, 최소한의 대비라도 하라며 '조심해라'는 말을 주고받아 왔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사회의 불안요소 걷어내기가 한창이다. 국가안전처가 신설되고, 각 단체는 '특별'이란 이름으로 점검에 나서면서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에 분주하다.

앞으로 '조심해라'는 말을 덜 해도 되는 세상이 올까. 이달 22일 대구 수성구의 소선여중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를 오갈 수 있게 통학로에 펜스라도 설치해 달라며 수성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구청은 펜스 설치 반대 민원 등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안전한 통학로 요구조차 관청이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아직은 '조심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불운(不運)에 대처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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