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계(昆溪) 백금옥(1918~1979) 여사의 유지를 받들어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보탬이 되어온 장학회 본래의 취지를 잘 살려나가겠습니다."
올 4월 (재)금옥장학회 아홉 번째 수장을 맡게 된 홍우흠(74) 이사장. 그는 이달 17일 대구교육대학 강당에서 2014년 장학금 수여식을 열고 대구지역 대학생 6명과 고교생 92명에게 모두 6천24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본 장학회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난과 역경을 딛고 큰 재산을 모은 백금옥 여사가 배우지 못한 한을 후세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취지에서 1979년에 설립됐습니다."
금옥장학회는 매년 대구지역 92개 고교와 6개 대학교를 대상으로 각 학교별로 교장과 총장 추천을 받은 학생 1인을 선발해 고교생 60만원, 대학생 12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지난 36년간 학생 6천370명이 모두 27억3천932만원의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백금옥 여사의 지난한 삶과 근검절약 정신,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아낌없이 베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고 백금옥 여사는 여동생 둘과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잇기 위해 보통학교 5학년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어려서부터 사과행상, 일본인 사장의 백화점 점원, 당구장 도우미로 생활전선에 나섰다. 그 사이 돈이 조금 모였으나 호사다마로 목병에 걸려 치료비로 날리고 빚을 안게 됐다.
고인은 이후 병이 낫지 않은 채 다시 행상을 해 모은 돈으로 21세 때 서문시장서 국밥집을 열었고, 넉넉한 인심에 '처녀 아줌마'란 별명을 얻어 이후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이를 다시 다방과 부동산에 투자해 큰 부를 이루었다. 부를 축적하는 가운데서도 고인은 그 인간성을 잃지 않아 당대의 시인 이은상 씨가 '곤계'란 아호와 '곤계송'을 지어 사람됨을 칭찬했다.
'곤륜산 계곡 속에/깊이 숨긴 옥이더니/나타나 햇빛 아래/그 모습 눈부시다/받들어 만인의 보배로/길이 지니오리다'
"실로 놀랄 정도로 돈을 번 백금옥 여사의 마지막 꿈은 가난하여 배움의 기회를 잃은 이 나라의 후세들에게 배움의 터전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처녀로 살며 거부가 된 백금옥 여사는 서울에 머물던 중 교육 사업에 전 재산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1978년 4월 학교법인 금옥학원 산하 금옥여중고(서울 양천구 소재)를 세웠고, 1979년 (재)금옥장학회와 같은 해 (재)금옥학술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고인의 평생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이 중 금옥장학회는 설립 초기에는 서울지역 학생들에게 장학혜택을 주다가 1992년쯤 대구장학회 사무실이 개소되면서 본격적으로 대구지역 학생들에게 금옥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대에 백 여사의 정신을 어린 학생들이 이어나갈 수 있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가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백금옥 여사는 타계하기 한 달여 전 국민훈장 동백장과 1981년 5'16민족상 교육부문 본상을 받았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