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반려동물 키우기-화장실 테러범

때는 느지막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일주일 동안 간절히 기다렸던 주말 아침인 만큼 늦게까지 게으름 피우며 빈둥거릴 작정이었던 나는, 아침을 먹고 나서도 정돈하지 않고 버려둔 이부자리로 향했다. 뒹굴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앨리샤가 들어왔다. 항상 내가 자려고 할 때면 어디서든 나타나 내 옆으로 들어와서 애교를 부리곤 하던 녀석이었기에 나는 내 머리 곁을 지나 손끝으로 스쳐 지나가는 앨리샤의 털 감촉을 느끼며 내가 하던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찰나의 시간이 스쳐간 후 왠지 모를 석연찮은 느낌이 나를 엄습해왔다. 너무나 조용했다.

평소의 앨리샤라면 내 곁을 지나쳐 사료 그릇으로 향하거나, 아니면 내 옆구리나 머리맡에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부리거나, 또는 이불 안에 호기심을 보이며 들어와서 갸르릉거리기 마련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내 주변을 한 바퀴 돈 후 바로 방 안에서 나가던 녀석이었는데, 그날의 앨리샤는 그 네 가지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고 정말 조용하게 내 발 아래쪽에 머물고 있었다. 늘어진 내 몸을 추스르고 상체를 일으키며 '앨리샤 뭐해?' 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멍해졌다. 앨리샤는 이불 위에, 그것도 지난밤에 처음 꺼낸 뽀송뽀송하고 보드라운 새 이불 위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 나는 뒷수습을 시작했다. 말끔히 치우고, 세탁기를 돌린 후에도 내 머릿속은 공황 상태였다. '도대체 왜'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종종 화장실을 가리지 않는다는 고양이 얘기를 들어보긴 했었기에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실수를, 게다가 체셔와 함께한 시간까지 생각하면 근 8년간 내가 목격한 적이 없던 장면을 바로 내 발아래에서 목격한 것이다. 머릿속 공황이 조금씩 잦아들며 찾아온 생각은 '아픈 게 아닐까'였다.

종종 화장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볼일을 보는 것은 신장 쪽에 질병이 온 징후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앨리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바로 병원이라도 데려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병원까지 집에서 최소 한 시간은 걸리기에 솔직히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며칠 유심히 지켜본 결과 꼬박꼬박 화장실에서 볼일을 잘 봤고 잘 먹었고 잘 뛰어놀았다. 걱정과는 달리 너무나 건강하고 특별할 것 없는 모습에 그냥 '게으름 피우는 내 모습이 보기 싫었나 보다'란 생각을 할 무렵, 앨리샤는 또다시 사고를 쳤다. 저녁 늦게 자려고 방에 들어간 나는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고, 불을 켜고 또다시 축축해져 있는 이불을 보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보름 가까이 이불 빨래와 앨리샤와 씨름한 끝에 원인을 찾는 데 성공했다. 이불 사건 얼마 전에도 두어 번 화장실 바깥에 볼일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주시하고 있을 때는 화장실을 잘 쓰는 모습을 보였기에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관찰 결과 사건의 범인은 동일했다. 그리고 원인은 바로 친환경적인 화장실을 쓰겠다고 바꾼 '펠렛(톱밥) 화장실'에 대한 앨리샤의 불만이었다. 매일 치우긴 했지만 남아 있던 톱밥들 때문인지, 아니면 인공적으로 만든 모래와 달리 냄새를 덜 잡아주기 때문인지, 앨리샤는 무언가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현했고, 결국 새 펠렛으로 깔끔하게 교체하고 냄새를 잡아주는 베이킹파우더를 듬뿍 뿌려준 후에야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동안 녀석이 몇 차례나 이불에 화풀이하는 바람에 난 새 이불을 포기해야 했고 화장실을 하루에 몇 차례고 치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 이후부터 앨리샤는 내게 '백치미 고양이'에서 '귀엽지만 뒤끝 작렬하는 녀석'으로 바뀌었다. 정말 애교도 많고 사랑스럽지만 예민하기 짝이 없는 녀석으로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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