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은퇴한 저는 집과 연금을 마련해 아내와 새 생활을 준비했지요. 그러나 아들네가 어차피 나중엔 우리를 모셔야 한다며 두 집 살림을 합치자고 했습니다. 당연히 우리 재산은 고스란히 아들 사업자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한집에 살면서, 며느리는 우리 덕에 윤택하게 살면서도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무례하고 냉정하며 안하무인이었지요. 어른 앞에서 예사로 애들을 혼내고 남편과 툭하면 불만을 쏟으며 싸우고 있습니다. 처음엔 우리도 목소리를 냈지만 며느리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저는 매일 아침 등산으로, 아내는 죄 없는 딸네 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힘들어 분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모 자식 관계가 손상되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녀를 위해 평생 살아오면서 이제 한 허리 펴나 싶었는데 뜻하지 않은 아들네와의 두 가정 결합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생애 끝에서는 부모님을 모신다는 효심의 발로와 또 이참에 재산을 합쳐 더 나은 가정경제를 이루려는 의욕으로 시작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금 부모가 보태어 준 돈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부모를 마치 짐처럼 대하고 있군요. 심지어 며느리는 자신이 가정의 중심이라도 된 듯 되레 어른을 불편하게 하고 급기야 한 공간에 있는 게 곤혹스러워 어른들이 출근하듯 종일 자리를 피해 주어야 하는 서글프고 억울한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자녀들은 어른들 도움으로 잘 살고 있고 또 노후자금까지 아낌없이 주었는데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끊임없이 부어달라는 철없는 모습에 서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다시 원래대로 자식들과 떨어져 나와 분가를 하고 싶으나 그나마도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죄의식을 가지게 되어 부모와 자식 간 벽이 생길까 염려하시는군요.
그러나 지금은 두 분이 건강관리를 잘 하시기만 한다면 100세를 사는 시대입니다. 지금부터 어른들의 인생도 삶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제까지의 반평생이 자녀들을 위해 헌신한 시기였다면 지금부터는 이제 자신을 스스로 지켜주고 보호하면서 제2의 인생을 즐겁고 멋있게 살아봐야 할 때입니다. 물론 자식들이 돌보아 주면 더없는 큰 복이겠습니다만, 그들도 아직은 자신들의 자식과 일가를 이루기 위해 고전 분투하는 시기이므로 부모의 기대를 채울 만큼은 여력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귀하가 먼저 분가 문제에 대해 아들네와 편안한 대화를 시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미안하지도 않게 또 그들이 죄책감을 가지지도 않게 어른답게 다독여 주는 것입니다.
"얘들아, 아직은 우리가 너희와 살기에 너무 젊고 멋진 것 같구나. 왠지 우리 부부가 정을 내고 애틋하게 지내려니 다 자란 너희들이 좀 방해가 되는구나. 우리 좀 더 늙으면 너희들에게 신세 질게. 그때 우리를 좀 잘 돌봐다오."
자식이 미안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로운 상황 정리는 훗날 자녀가 귀하를 안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랑으로 저축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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