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편하게 듣는 클래식]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크로이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1910)가 61세였을 때 집필한 '크로이처 소나타'는 크로이처의 드라마틱함에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포즈드니셰프는 자신의 아내와 다른 남자가 함께 이중주를 연주하던 순간을 목격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다. 기차 안에서 그는 살인을 회상하며 긴 독백을 읊조리는데, 역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크로이처 소나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나타, 끔찍합니다. 특히 그 첫 부분이…. (중략) 크로이처 소나타를 작곡한 베토벤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 소나타는 나에게 끔찍한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마치 새로운 감정, 내가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전에 살면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마치 뭔가 내 영혼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9번 바이올린 소나타는 베토벤이 남긴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중 5번 '봄'과 함께 널리 애호되고 가장 뛰어난 소나타로 평가받는다.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크로이처에게 헌정돼 '크로이처 소나타'로 불린다. 베토벤의 활동 중기에 작곡돼 그야말로 베토벤 음악의 특징을 다 갖추고 있는 곡이다. 힘찬 피아노 음 위로 서정적인 바이올린 멜로디가 겹치며 베토벤 특유의 타오르는 정열과 내면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오늘은 오보린(피아니스트)과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의 연주로 이 곡을 들어본다. 1악장의 시작은 바이올린의 무반주 독주. 템포는 여느 바이올린 소나타에 비해 느리다. 그러나 분위기는 전형적인 베토벤이다. 바이올린의 선율에 피아노가 응답하듯 곡을 되풀이하고 템포가 빨라지면서 제시부가 시작된다. 그 주고받음은 어느덧 놀라울 정도로 격렬하고 화려해진다. 독일의 음악 평론가 아놀드 세링은 1악장을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싸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2악장은 피아노의 음색에 바이올린이 반복적으로 화답하며 이를 바탕으로 4개의 변주곡이 잇따른다. 이어지는 3악장. 서주부터 들끓는다. 피아노가 화음을 연주하고 바이올린이 뛰쳐나가는 듯 주제를 연주한다. 피아노의 강렬한 리듬도 듣는 이를 압도한다. 질주하는 듯한 오보린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바이올린 소나타가 아닌 피아노 소나타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격렬함 속에서도 노련한 테크닉으로 미묘한 음색의 차이를 세밀하게 잡아내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감정을 극적으로 고양시키는 오보린에 비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낭만적이면서도 당당한 품위가 있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강하면서도 유려하게 흘러간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기교보다 감정을 드넓게 고양시키고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즉흥적인 감흥과 선율의 아름다움, 풍성하고 힘있는 표현,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만의 힘과 기백이 느껴지는 놓칠 수 없는 좋은 음반 중 하나이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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