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산리(丹山里)는 약 60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마을 주위의 산과 들의 흙색이 아주 붉어 단음(丹陰)이라 하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령에 의거한 행정구역의 폐합에 따라 봉단산(鳳丹山)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단산(丹山)이라 하였다.'
마을 어귀에 게시된 위 내용의 유래와는 조금 다르게 마을 어른들은 "단풍이 많은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라 '단산리'라 부른다"고 했다.
건축할 부지가 속한 마을은, 대구와 청도를 잇는 간선도로에서 나지막한 언덕 끝자락을 5분쯤 빗겨나 있는데도, 온갖 세상으로부터 갑자기 조용해진다. 멀리서 바라본 마을 전경은, 양쪽의 크게 높지 않은 야산을 배경으로 고즈넉함이 물씬 묻어나는 그래서 문득 소박하고 정겨워 '반가운 고향' 같다. 단산, 참하고 정감 나는 이름이다.
대지는, 아마도 농로로 확장된 남쪽 8m 정도의 직선도로와 서쪽으로 골목에서 넓혀진 휘어진 도로에 접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마을의 구조(큰 자연의 흐름) 속에서 대지는 남쪽으로 조금 올려다봐야 하는, 그래서 북쪽으론 차라리 편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조건 속에 놓여 있었다.
일반적인 전원의 택지들은 집 뒤로 언덕이나 산을 배경으로 하고, 긴 시간 만들어진 마을을 나지막하게 내려다보는 경치를 주택에서의 풍경으로 취하는 게 대부분인데, 단산리 주택은 이에 더하여 스스로가 새로운 볼륨, 컬러, 질감 등으로 기존 마을의 오랜 흐름과 질서에 어떻게 순응되어야 하는가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질문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그래도 저녁 시간 아련하게 피어나던 연기 내음과 어둑어둑 고요하게 밀려드는 적막감은 왜 그리도 좋던지….
주택의 공간적 그룹핑은 거실, 식당(주방), 안방 등 주 생활공간과 게스트 룸, 그리고 음악감상실과 예비실, 기도실 등 보조생활공간으로 분류되어 수평적, 수직적으로 연계 혹은 독립되게 계획되었다. 평면은 거실과 식당, 게스트 룸을 각각 위계적으로 이격시키고, 환경적 정서적 측면의 상호 보완을 위하여 내'외부 공간이 서로 강제적으로 간섭되게 하였다. 또한 여기서 각 공간은 서로 배경이 되고 차경이 되는 방법으로 한정되고 확장되었다. 거실은 벽난로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공간으로 오전 시간 내내 밝은 빛이 머물게 하였고 식당은 전통한옥에서의 대청처럼 주택의 전체적 중심에 놓여 수평적 수직적으로 주택의 구심점이 되게 하였다. '식당에서 데크와 거실로 이어진 시선' '식당에서 중정, 툇마루, 게스트 룸'으로 이어진 의도된 시선 처리는 이동과 정지, 막힘과 열림으로 조율되는 전통한옥 건축기법의 재해석 결과이다. 안방은 서쪽으로 창이 없는 욕실과 드레스 룸으로 둘러쳐 프라이빗한 정서를 확보했으며 옥외 샤워 또한 여름 등목의 재미를 건축화한 부분이다. 계단은 현대적인 디자인을 채용하고 중정으로 향한 시선과 천창의 빛으로 상부공간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전망 확보가 쉬운 2층에선 오히려 창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외부의 풍경을 더 귀하게 볼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창은 철저하게 외부조망과의 관계에서 열리고 닫혔으며, 빛은 벽, 바닥 등 맺힐 위치와 시간의 관계로 다듬어졌다. 외부 마감은 자연성이 묻어나는 재료로 주변에 스며들 듯 조화되길 의도하였으며, 실제 노출콘크리트와 삼나무 마감은 오랜 시간 형성되어온 단산리의 색채와 분위기에 잘 어울려 보인다.
건축은 보이는 외형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특성으로 인해 조각화된 하나의 오브제로 인식되기 쉬우나, 사실은 그 건축 속에 만들어진 비워진 공간과 질서의 구축이 훨씬 건축의 본질에 가깝다. 비워진 공간과 유도된 시선의 처리 그리고 의도된 동선의 흐름은 사용자의 행동을 강제하고 조정한다는 차원에서 건축은 결국 인문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쓰임과 크기, 느낌 등 생각을 정리하고, 수많은 이미지와 주변의 조언들로부터 사용자 스스로를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a process)이 건축이기에, 좋은 주택은 사용자가 이미 살아온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 자신만의 '삶의 철학과 방법'으로 인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글=ADF건축 건축학박사 김홍근
사진=건축사진가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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