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윤희의 아담한 이야기] 100년과의 조우

100년의 시간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아니다. 돌아본다는 것은 너무 과분한 표현이다. 100년의 시간이 나에게로 왔다. 아니다. 그것도 나에겐 넘치는 표현이다.

긴 시간을 넘겨다 볼 안목을 갖추지 못했기에 마음만 저만치 앞서 달려가 있어 지레 고달팠고,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속내는 하루하루 타들어 갔다.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여 100년 된 공간을 채우는 작업. '성유스티노신학교'. 신앙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척박한 시대를 살아냈던 장소다. 이곳의 발행물 기획을 오랫동안 수차례 해 온 것이 계기가 돼 최근 '성유스티노신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재탄생하게 된 이곳의 기획과 콘텐츠 디자인까지 맡게 되었다.

성유스티노신학교는 1914년 프랑스 알자스 태생의 드망즈 주교가 이 땅에 설립한 가톨릭 사제 양성 교육기관이었다. 1945년 일제강점기 때 강제 폐교되었다가 1982년 선목신학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교 하였고, 2014년 현재 그 정식 교명은 대구관구 대신학원이다. 교명의 변화만큼이나 건축물도 다양한 기능적 변화를 겪어왔다. 사제 양성 장소에서 일본군 병원으로, 한국전쟁 때는 미군의 주둔지였다가 1960년대는 고등학교 강당으로, 1991년부터는 다시 사제 양성 장소로, 먼 길을 돌고 돌아왔다. 건축물의 형태도 무쌍한 변화를 겪었다. 1914년 준공 당시에는 ㄱ자형으로 신축되었다가 1922년엔 ㄷ자형으로 확장되면서 건물 양쪽에 날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1969년엔 오른쪽 날개가, 1991년엔 왼쪽 날개가 철거되었다.

사라진 건축물의 흔적만큼이나 사라진 자료들도 많았지만 100년 전 사람들의 책과 기록물, 유품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당시 교과서를 비롯한 책들의 편집, 제책, 종이, 인쇄 등도 흥미로웠지만 그분들의 책에서 잉크 빛이 바랜 편지글, 엽서, 책자 가장자리에 빼곡히 적힌 라틴어(당시 신학생들의 공용어) 글귀며 메모, 문서고에도 없었던 귀한 사제서품 상본까지 찾아냈을 때에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람들이 유산을 간직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 책의 한 귀퉁이에조차도 메모지로 썼던 그 흔적들이 한 세기를 지나면서 보물이 되어 있었다. 그 빛나는 보물들은 어제의 개관식에서 세상 사람들과 만났다. 그 뜻깊은 조우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역사의 산물임을.

이번 작업에서의 많은 순간들이 또한 나의 출판 이력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자료와 책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그간 정확하고 단단한 기록물을 위해 얼마나 깊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동안 신학교와 관련해 여러 곳에서 발간되었던 서적들의 내용이 서로 달라 너무나 많은 날을 자료 대조에 보내야 했다.

과거의 기록물은 쌓인 눈 위의 발자국과도 같아서 그 선명한 흔적은 앞서 걸었던 이가 보낸 과거의 시간과 만나게 해준다. 역사책을 만들 때마다 절감한 것이 자료의 부재였고 기록의 부정확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미래의 누군가를 헛갈리게 하는 또 하나의 불편한 발자국을 남기게 될까 작업 내내 조심스러웠다.

"너무 자주 되새겨지는 기억과,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되는 기억은 정형화되는 경향이 있다. 원래 기억 대신 들어앉아 스스로를 희생시켜가며 자라는 가운데 구체화되고 완벽해지고 치장된다."

'주기율표'의 저자인 프리모 레비가 한 말이다.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무심코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그래서 나의 미션 범위는 지난한 세월과 사건을 겪어온 그 공간과 그 공간을 살아낸 이들의 100년, 그리고 앞으로 그 공간을 찾게 될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게 될 또 다른 100년까지를 아울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편집출판디자인회사 홍익포럼 대표 gratia-de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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