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 50년 영신사
"노력하는 만큼 돈을 버는 게 수선일인 것 같아요. 조금 남아도 제대로 해 주면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지요."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아진상가 내 수선가게들 중 50년의 내공을 조용히 자랑하는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 50년째 수선일을 해 온 영신사의 이해도(74) 씨는 기자에게 "오래 하긴 했지만 크게 특별한 거 없다"며 부끄러워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니 수선일에 대한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씨의 수선 실력은 "괜히 50년을 서문시장에서 버틴 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한 손님이 20년이 넘은 코트를 하나 맡기고 갔어요. 보기 좋게 수선을 해달라고 하길래 당시에 좀 잘나가는 스타일로 손봐 드렸거든요. 그런데 손님이 맡긴 옷을 보더니 '내 옷 어디갔냐'고 하더구만요. 자기 옷을 못 알아보더라고요. 하긴 늘 입던 걸 최신 스타일로 바꿔 놨으니 못 알아볼 수도 있겠다 싶데요."
지금도 영신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선을 맡기는 택배가 줄을 잇는다. 대구경북지역뿐만 아니라 경남, 강원, 서울에서도 이 씨의 솜씨를 믿고 수선을 맡긴다. 이 씨는 "어떤 단골손님은 중학교 때 내게 교복을 수선해 갔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손자를 데리고 와서 옷을 맡기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50년 동안 서문시장에서 수선일을 하면서 가장 전성기는 IMF 외환위기 때"였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우니 옷을 새로 사 입는 사람들보다는 고쳐 입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수선일은 옷을 파는 장사와는 달라서 큰돈을 벌기 쉽지 않다. 수선비가 20년 넘게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짓단 수선 2천원, 구멍난 곳 자수로 마감하는 데는 3천~1만원, 코트 등 두꺼운 옷을 수선하는 데는 5만~7만원을 받는다. 이 씨는 "예전에는 유행이 바뀌면 옷을 그 유행에 맞게 수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자기 개성에 맞게 수선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고령이기는 하지만 이 씨는 "아직 일을 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손님들 중 '나이 많은 사람이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눈빛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도 제가 재봉틀 앞에 앉아 수선하면 완벽하다고 만족해하며 돌아가시는 손님이 많아요. 건강 때문에 힘들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이 씨에게서 일을 배운 후 대구 각지로 흩어져 수선집을 차린 사람들은 잘 배운 솜씨 덕택에 잘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씨는 종업원들에게 정확과 친절함을 꼭 갖추라고 신신당부한다. 이 씨는 "한 사람 잘 못해주면 열 사람을 놓치는 게 이 바닥이니만큼 종업원들에게 '돈에 관계없이 바짓단 하나라도 제대로 고쳐주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게를 운영한 뒤 일을 잘하는 종업원에게 가게를 넘기고 은퇴할 생각이다. 이 씨는 자식들에게는 이 일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가족이 들어오니 오히려 일이 힘들더라"며 자녀에게는 수선일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지금 일하는 종업원이 일을 내 마음에 들게 잘한다"며 "아마 내 뒤를 이어 잘 운영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48년 양복 명장 '베르가모 김태식 테일러'
"손님들이 제가 만든 옷을 입으면 항상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그 보람으로 지금까지 정장을 만들어 왔습니다."
대구 중구 대봉동 한양가든테라스 1층의 '베르가모 김태식 테일러'는 48년간 양복정장을 만들며 '명장' 칭호를 얻은 김태식(62) 명장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그전에도 많은 맞춤 양복점들이 있었겠지만 지금껏 주인 한 번 안 바뀌고 가게를 유지해 온 곳은 많지 않다.
'베르가모 김태식 테일러'는 1984년 처음 중앙네거리 CGV대구아카데미 근처에서 개업했다. 김태식 명장은 "양복정장은 대구에서 제일 잘 만들 자신이 있었기에 가게 이름부터 내 이름을 걸었다"고 말했다. 이후 동성로를 거쳐 지금의 대봉동 자리로 가게를 옮겼다. '베르가모'라는 이름을 덧붙인 건 대봉동으로 옮기고 나서다. 베르가모는 밀라노와 가까운 이탈리아 북부의 한 도시 이름으로, 좀 더 젊은 느낌을 주기 위해 붙였더니 반응도 좋았다.
한때 대구시내에 꽤 많았던 맞춤 정장 양복점은 기성복이 대중화되면서 위기를 맞더니 IMF 외환위기 이후 점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기성 양복정장 브랜드 때문에 맞춤 정장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줄어들었다. 김태식 테일러는 이 같은 위기를 기술 연구를 통해 극복했다. 김태식 명장이 2002년 명장 칭호를 얻은 것 또한 어깨 부분을 편안하게 만든 정장이 품질 및 공정 개선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태식 명장과 4명의 기술자가 정장 한 벌을 만들기까지는 약 15일의 기간이 필요하다. 옷 한 벌을 제대로 재봉하는 데에만 꼬박 이틀이 걸린다. 재단하기 전에 원단의 전처리 작업도 필수다. 김 명장은 인터뷰 도중 자신의 자리 뒤에 있는 양복지 한 필을 보여주며 "이 원단은 재단 전에 물을 살짝 뿌려 숙성과정을 거친 뒤 열처리 과정을 거친 천인데 이 작업이 3일 걸린다"고 했다. 굳이 이런 작업까지 하는 이유를 묻자 김 명장은 "이렇게 해야 오래 입어도 옷이 뒤틀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태식 명장이 처음 양복점을 열었을 때 정장 한 벌의 가격은 13만~20만원 사이였다. 지금은 한 벌에 최소한 100만원 이상은 들어야 김 명장의 옷을 입을 수 있다. 대구에서 오래 양복을 만들다 보니 김 명장을 찾는 손님들 중에는 대를 이어 찾는 단골손님이 많다. 김 명장은 "작고하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타지역에서 와서 정장을 맞추는 손님도 있고, 동성로로 가게를 옮겼을 때 통 크게 양복 세 벌을 맞춰 가신 첫 손님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태식 명장은 본인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옷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후진양성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김 명장은 "지금 맞춤정장을 찾는 사람들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기성복 정장에서 느낄 수 없는 맞춤 정장의 매력을 다시 느끼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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