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엄마와 기생충

며칠 전 신문에 13세 소년의 몸에서 3.5m 길이의 기생충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지금이야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등으로 알려진 장내 기생충이 드물고 기생충 검사나 회충약을 먹을 일도 거의 없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거의 대부분 국민들이 기생충과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은 채변 봉투에 대변을 받아서 제출하고, 기생충이 발견된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회충약을 먹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리고 요즈음 기생충약은 장내 기생충을 죽여서 소화를 시켜버리기 때문에 대변으로 기생충이 나오는 일이 거의 없지만, 옛날 그 시절 기생충약은 기생충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일시 마비를 시켜서 회충이 장내에 붙어 있지 못해서 대변으로 배설되는 일이 많았다.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집 앞에 배추밭이 있었는데 당시에 아이들은 똥을 배추밭에 누었다. 똥이 거름이 되라고. 어느 달빛 환한 밤이었다. 회충약을 먹고 배추밭에서 똥을 누는데 큰 회충이 나오다가 그만 중간에서 어중간하게 걸리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회충을 엉덩이에 매단 채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갔을 때 엄마는 웃으시면서 그 회충을 손으로 잡아 꺼내주셨다.

요충이라는 기생충은 알을 낳을 때는 항문 밖으로 기어 나와서 알을 낳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요충이 항문으로 기어 나올 때 아주 간지럽기 때문에 말도 못하는 아이들은 마냥 울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호롱불 밑에서 살았다. 엄마는 동생이나 내가 밤에 울면 "이놈들이 또 알 까러 나오나 보다. 어디 한 번 볼까?" 하시면서 우리 엉덩이를 벌리고는 살금살금 기어나오는 요충들을 한 마리씩 잡아다가 호롱불에 태워 죽이고는 하셨다.

아무리 자식이 사랑스럽다고는 하지만 아들 엉덩이에 걸려 있는 회충이, 아들 엉덩이에 살금살금 기어 나오는 요충이 얼마나 징그러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라는 분은 그런 사람들이다. 아무리 더럽고 징그럽고 무서워도 자식을 위해서는 맨손으로라도 기생충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잡아 줄 수 있는. 그 용감하던 어머니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제는 귀도 약해지셔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해서는 잘 알아듣지 못하시고, 눈조차 침침해서 호롱불 밑에서 벌레를 잡기는커녕 밝은 형광등 밑에서 바늘에 실도 제대로 못 끼우신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식 사랑만은 여전히 변함없으신 어머니.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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