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나 청소년들에게 배앓이는 흔한 일이다. 한 달 이상 주기적으로 배가 아픈 만성 복통 환자도 초등학생 10명 중 2명꼴이나 된다. 하지만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혹시나 큰 병일까 하는 두려움에 자주 병원을 찾게 되고, 의사도 숨겨진 병이 있을까 싶어 여러 가지 검사를 하지만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만성 복통을 호소하는 소아청소년의 90%는 시간이 가면 저절로 좋아진다. 복통의 원인이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적인 불안감을 말로 전달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배가 아프다'는 증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만성 복통 환자 중 10%는 실제 병이 있다. 위'십이지장 궤양이나 간이나 콩팥 질환, 장의 염증, 장 결핵, 복통으로 나타나는 간질이나 편두통 등 원인도 다양하다.
◆아이가 보내는 위험 신호 '빨간 깃발'
소아 만성 복통은 대개 1, 2개월가량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로 반복적으로 복통이 계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실제로 병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위험 신호는 '빨간 깃발 증상'(red flag sy mptoms or signs)이라고 한다.
지훈(가명'11)이가 복통에 시달린 건 여섯 살 때부터였다. 매일 오전 2, 3시만 되면 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지훈이를 괴롭혔다. 1주일에 한 번 정도였던 복통은 점점 잦아졌고, 매일 밤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전형적인 빨간 깃발인 셈이다. 심지어 새벽마다 비명을 지르는 통에 옆집에서 놀라 찾아올 정도였다.
4년간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뇌파 검사를 통해 밝혀진 지훈이의 병명은 '복부 간질'이었다. 복부 간질은 지난 34년간 17건만 보고됐을 정도로 굉장히 드문 질환이다. 지훈이는 2년간 약물치료를 거쳐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빨간 깃발은 심리적인 배앓이와 다른 증상을 보인다. 우선 낮에는 잘 지내다가 밤에 배가 아파 자주 깰 때는 의심해야 한다. 심리적인 원인일 경우 대개 밤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다가 깬다면 위궤양이나 염증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배가 아플 때 식은땀을 흘리고 자지러질 듯 심하거나 아프고 나면 처지는 경우도 있다. 특별한 원인이 없이 살이 빠지거나 체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어린 아이가 빈혈이 오고 기력이 떨어지며 재미있는 일도 싫어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대변에 피가 섞이거나 피를 토할 경우도 위험 신호다.
항문 주위에 고름 주머니가 생기는 경우는 요즘 급증하는 염증성 장질환을 의심해야 봐야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이 오래가고 설사나 구토를 동반하는 경우나 아픈 부위가 배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또는 특정 부위가 지속적으로 아픈 경우에도 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배가 아닌 정신이 아픈 아이들
중학생 정민(가명'12)이는 한 달 내내 복통과 두통에 시달렸다. 밤마다 찾아오는 고통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고, 체중이 4㎏이나 줄었다. 위 내시경과 혈액 검사, 복부 CT 촬영까지 했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정민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소아정신과였다. 상담 과정에서 정민이는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수업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극심한 부담감에 시달렸다는 것.
기말고사를 앞두고 정민이에게 두통이 찾아왔고, 극심한 복통으로 이어졌다. 가족들은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이유없이 아픈 정민이를 꾸짖기만 했다. 정민이는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흐느꼈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복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위험 신호 증상이 없이 밥 먹을 때면 배가 아프거나 배꼽 주위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경우, 명치 쪽이 아프다고 할 경우에는 심리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배가 아프다고 하다가도 친구가 부르면 뛰어나가 놀고, 좋아하는 음식을 주면 잘 먹는 경우에도 아이의 정신 건강을 살펴봐야 한다.
최근에는 학업 스트레스나 왕따, 학교폭력, 가족의 불화 등 다양한 심리적인 원인으로 복통을 호소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는 추세다. 대부분 간단한 상담이나 부모님, 선생님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지만 증상이 심각할 경우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어린아이도 내시경 검사 가능해
말을 하지 못하는 신생아나 어린아이는 내시경 검사를 통해 병을 진단할 수 있다. 못이나 핀을 삼켰거나 피를 토하는 경우, 잦은 구토를 하면서 체중이 늘지 않는 아기는 내시경 검사가 도움이 된다. 혈변을 누거나 태어날 때부터 계속 설사를 하는 경우는 위궤양이나 식도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 빈혈이 있지만 잘 치료되지 않는 경우, 거대 세포 바이러스 감염 등에도 내시경 검사가 필요하다.
아기들은 내시경을 할 때 수면 마취나 전신 마취를 해서 검사 중 공포를 없애고 시술 후에도 정신적인 상처가 남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생후 6개월 이내 아기들은 고통의 기억이 남지 않기 때문에 마취 없이 내시경 검사를 한다. 태어난 지 6개월이 넘으면 대부분 수면 마취를 이용해 검사를 한다.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황진복 교수는 "수면 마취를 하면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지능이 떨어진다는 건 의학적으로 근거 없는 얘기"라며 "아기의 상태가 위중하거나 이물질을 삼켜 제거해야 하는 경우에는 전신마취를 해서 안전하게 시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황진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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