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뻘에 말뚝 박는 법

함민복(1962~ )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긴 정치망 말이나 김 말도

짧은 새우 그물 말이나 큰 말 잡아 줄 써개말도

말뚝을 잡고 손으로 또는 발로

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

힘으로 내박는 것이 아니라

흔들다보면 뻘이 물러지고 물기에 젖어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

뻘이 말뚝을 빨아들여 점점점 빨리 깊이 빨아주어

정말 외설스럽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흔들어 주어야 한다

수평이 수직을 세워

그물 넝쿨을 걸고

물고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상상을 하며

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며 지그시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시집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05.

시인이 강화도 바닷가 마을에 정착해 살면서 갯마을 사람들이 뻘에 말뚝 박는 것을 보고 쓴 시다. 흙에 말뚝을 박을 때는 말뚝을 세우고 망치로 힘차게 내려치면 된다. 그러나 뻘에서 그렇게 하면 실패한다. 뻘에서는 앞뒤로 좌우로 흔들기만 하면 된다. 그래야 제대로 말뚝을 박을 수 있다. 뻘에 말뚝 박기는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는 삶의 이치를 유추하게 한다. 시인은 하찮은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자이다. 더구나 외설스러운 분위기가 시의 생동감을 더해준다.

시인 kweon51@cho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