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 현장기록 112] 한밤의 소백산 산행기

경찰은 112로 접수된 신고사건에 대해 범죄 피해와 긴급구조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위치추적을 할 수 있다. 이는 위치정보법에 근거를 두고 시행하고 있는데, 2012년 4월 수원 오원춘 사건 이후 위치정보 조회 건수가 점점 늘고 있기도 하다. 경북경찰청의 경우 월 100여 건, 하루 평균 3~5건의 개인 위치정보를 조회하고 있으며 이 중 자살 기도 사건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 조회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 단순가출이나 연락두절의 경우에는 위치정보 조회를 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요청 건수는 계속해 증가할 전망이다. 월 100여 건의 요청 건수 중 실제 자살이나 조난 등 긴급한 상황으로 확인된 경우는 60여 건(60%) 정도고 나머지는 오인신고가 대부분이다.

지난 3월 초 경북경찰청 112종합상황실로 여자의 긴급한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112 경찰입니다,"

"예 여기 영주인데요, 남편이 아침에 소백산 쪽에 등산을 하러 간다고 나갔는데 아직 집에 오지 않았어요, 전화기는 꺼져 있고요. 혹시 조난당한 것이 아닌지 걱정됩니다, 남편 휴대폰 위치 추적을 할 수 없을까요?"

전화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후 9시, 봄이 오긴 했지만 아직 밤이면 두터운 외투를 입고 다녀야 할 정도로 쌀쌀해 초겨울 같은 날씨였다. 그리고 1,400m가 넘는 소백산의 밤 온도는 영하의 날씨로 자칫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다. 112종합상황실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관할서인 영주경찰서에 신고자 상대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119종합상황실에 지원요청을 했다. 영주서 관할 경찰관의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영주서 순찰차인데요. 오후 3시경에 소백산에서 찍은 사진을 부인에게 전송했고, 다른 코스로 등산할 예정이라는 문자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고자의 남편이 등산갈 때 운행한 갤로퍼 승용차량도 등산로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소백산 등산 중 조난당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때 시각이 오후 9시 30분. 빨리 수색하여 찾지 않으면 캄캄한 밤이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험준한 소백산에서 조난자의 생명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난자의 휴대폰으로 위치 추적을 다시 했다. 역시 마지막 기지국 위치가 소백산 중턱을 가리키고 있었다. 난감하다. 기지국은 오차 범위가 최대 2㎞로 그 넓은 산속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야간에 수색한다는 건 전문 산악인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영주경찰서 관할 파출소 경찰관, 5분타격대 대원, 119구급대 등 약 20여 명의 구조요원들은 랜턴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약 2시간의 수색이 계속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오후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면 구조요원들의 안전까지 장담할 수 없으므로 야간 수색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경북경찰청 112상황실에서는 한 시간 간격으로 조난자 휴대폰으로 위치 추적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있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 위치가 산 아래 마을 쪽에서 잡히기 시작했다. 그것도 비교적 정확한 위치정보를 알려주는 와이파이 신호였다. 지방청 112상황실에서 급하게 관할서로 무전을 해서 확인토록 했다. 약 10분 뒤 무전으로 출동 경찰관의 허탈한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출동 직원인데요. 요구조자가 술에 취해서 노래방에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안전합니다."

"요구조자 확실한가요?"

재차 확인했다.

"오늘 등산한 것도 맞고 저녁에 내려와서 술 한잔 마시고 노래방에서 잠을 자다 술이 깨서 노래를 부르고 놀았답니다."

3시간가량 긴장감 속에서 조난자가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하며 동분서주하던 우리들에게 허탈감이 몰려왔다. 또 아무도 없는 어두운 산속을 수색하며 숨을 헐떡였을 우리 구조요원들은 어떠했겠는가. 부인한테 이야기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그냥 "집에서 걱정하니 빨리 귀가하시라"고 하며 아저씨를 귀가시켰다.

이 에피소드는 정확한 물증과 단서 확보가 없는 의심만으로 위치 조회를 하고 그 장소에 물적, 인적 자원을 총투입했던 전형적인 경찰력 낭비 사례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신고자의 신고 내용을 경시할 수만은 없다. 위치정보 조회가 운영되지 않던 시기에는 집 주변 및 잘 가는 장소를 확인하면서 남편이 귀가하기를 기다리며 애태우지 않았을까? 하지만 신고자도 경찰도 긴급한 상황일수록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개인 위치정보 조회는 장점과 단점을 잘 활용한다면 정말로 긴급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민을 위해 필요한 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홍익치안'의 전도사로서 다시는 제2의 오원춘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느슨한 마음의 고삐를 죄어 본다.

정상훈 경북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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