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는 '기자 쓰레기'의 합성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언론과 유족을 대하는 기자들의 취재 방식을 문제 삼으며 기레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현장도 장례식장이었다. 그 마음이 어떤지 묻지 않아도 잘 아는데, 유족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기자랍시고 찾아갔다가 욕만 먹고 온 적도 있었다. 이렇듯 기자는 종종 가해자였다. 인터뷰를 하며 질문으로 폭력을 가했고, 카메라로 그 아픔에 생채기를 냈다.
책상머리에서 배운 언론의 역할과 취재 현장의 간극은 멀었다. 몇 년 전 대구는 학교 폭력에 시달린 청소년들의 자살로 시끄러웠다. 그때 유서를 확보하기 위한 기자들의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먼저 유서를 손에 넣은 사람이 능력 있는 기자였고, 그 기자가 쓴 기사에는 '단독'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한 번 노출된 유서는 통신과 신문, 방송으로 모자이크도 없이 퍼져 나갔다. 유서는 죽음을 결심한 이가 가감 없는 감정을 손 글씨로 남긴 최후의 기록이다.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터넷에 떠다니는 것이 무서웠다. 그 유서를 복사해 신문사로 가져온 나도 기레기였다.
주변에서 기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내가 3년차 기자였을 때 만난 A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천안함 수색 도중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딸이었다. 천안함 2주기를 앞두고 의로운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저는 기자가 싫어요"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수많은 기자에게 시달렸을 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A씨가 다니는 학교로 찾아갔고, 오전 10시에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무작정 기다렸다. 그를 기다리면서 '독자의 알권리'보다 '안 만나주면 어쩌지'하는 생각과 함께 캡(경찰청 담당 기자)의 실망한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기사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마 이날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기자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미담 기사를 쓰면서 취재원이 원치않는 인터뷰를 억지로 하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었다. 캔커피를 사서 손 편지를 썼고, 상처를 후비는 인터뷰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진심을 담았다. 그리고 오후 4시쯤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딱 10분만 더 기다리려고 했는데 A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굴도 모르는 기자가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게 수업 내내 맘에 걸렸다고 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웃으며 인터뷰를 했고, 사진은 찍지 않았다. 진심은 통한다는 경험치를 얻은 내 인생의 특종이었다.
그때 A씨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언니가 기자가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좋은 언니가 되는 것은 쉽지만 좋은 기자가 되는 것은 이보다 훨씬 어려웠다. 나는 어떤 기자인가. 기사를 위한 기사를 쓰는 기자는 아니었는가. 얼마 전 회사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최소한 재활용할 수 있는 기레기가 돼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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