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슬로건이 귓전에 생생하다. 6월 4일, 지방선거가 있었다. 연이어 터지는 인명사고 때문인지 선거가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다. 거리를 누비던 유세차량이 뜸하고 홍보 노래와 율동이 사라졌다. 그 덕분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내온 투표안내문을 꼼꼼히 살펴봤다. 아무리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지만 실속이 의심스러운 슬로건만 두드러질 뿐 책임감 있는 정책은 눈에 띄지 않았다.
선거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이들과 그것을 원하는 서민들의 소망이 일치하면 금상첨화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꿈일 뿐이다. 양쪽의 소망이 합치된 세상에 대한 꿈은 줄곤 있어왔다. 문학이나 그림도 이상향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림으로는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이 남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꼽을 수 있다. 비록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음에도, 복사꽃이 만발한 이상향인 무릉도원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그림은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안견이 듣고 3일 만에 완성한 그림이다. 안평대군은 예술에 대한 안목이 뛰어났고,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큰손 컬렉터'이기도 했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희귀한 수집품들을 보면서 작품을 보는 안목과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꼼꼼한 붓놀림으로 조형된, 거대한 바위를 지나 도화가 만발한 무릉도원으로 이어지는 실감 나는 스토리를 펼쳐보인다. 그림에는 안평대군의 발문을 비롯해서 신숙주, 이개, 정인지,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당시의 대표적 명사들의 시문이 곁들여져 있다. 안견의 그림에 최고의 감상가인 안평대군, 그리고 21명의 명사 등의 시와 서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아쉽게도 이 그림은 현재 일본 덴리(天理)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그동안 세 차례의 외출로 우리나라를 찾아와서 먹먹한 감동과 가슴 쓰린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2009년에 세 번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들이를 왔을 때, 나는 새벽 기차를 타고 달려갔다. 오전 9시부터 긴 줄을 선 연후에야 겨우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진품을 본다는 것은 화질 좋은 도판 수만 번을 보는 것보다 낫다는 점을 실감 나게 했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환상적으로 표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년 뒤 '살생부'가 된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수양대군이 '몽유도원도'와 관련된 안평대군과 일부 학자들을 제거한 것이다. 피비린내나는 계유정난의 중심에 이 희대의 걸작이 자리하고 있었다.
'몽유도원도'는 불우한 작품이지만, 그림으로서는 그저 아늑한 꿈같은 세상을 우리들에게 보여줄 뿐이다. 한 폭의 그림으로 남은 안평대군의 꿈을 음미하면서, 나의 한 표가 새로운 세상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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