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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뿐인 '상향식 공천'…공정선거는 없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기초의원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기초의원'단체장 무공천을 뒤집고 아래로부터, 아래가 요구하는 공천을 하겠다고 했지만 극심한 폐해를 낳았다. 새누리당 경선에 나섰던 후보들은 오류투성이의 100% 여론조사 결과에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시했다. 매일신문 DB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은 그간의 공천 잡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광역단체장 선거에 참여한 캠프 한 관계자는 "이런 식의 상향식 공천이라면 책임당원을 어떻게든 포섭해 당심을 얻고, 여론조사는 슬쩍 조작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총평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기초의원'단체장 무공천을 뒤집고 아래로부터, 아래가 요구하는 공천을 하겠다던 여당의 공천은 극심한 폐해를 낳았다. 가장 민주적인 공천제로 평가되지만 그 속엔 본질적 대안이 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숨어 있다. "무늬만 상향식"이란 말이 떠도는 까닭이기도 하다.

◆고무줄 컷오프와 상처투성이 100% 여론조사

새누리당은 선거 때마다 만든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공추위)를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공천관리위)라는 명칭으로 바꿨다. 공천에 직접 관여한다기보다 공천 관리에 집중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기존 공추위는 후보자를 직접 결정했다면 이번 공천관리위는 몇 명의 후보를 당원, 대의원, 시민에게 내놓을 것인가를 결정했다. 자기가 챙길 사람을 꼭 공천토록 입김을 넣을 수 있는 시스템을 이 사람만은 절대 공천에서 배제해 컷오프(예비경선)시킬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꾼 것이다. 공천관리위가 회의를 끝내면 결과를 브리핑할 뿐 어떤 하자로 컷오프됐는지, 여론조사 결과는 어땠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어떤 곳은 2배수로 압축하고 어떤 곳은 4배수로 압축했다. 여론조사 오차범위 내라고 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된 곳에선 당에 연유를 물었지만 알 수 없었다. 상주와 청송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 룰은 당원과 일반시민의 생각을 반반씩 섞어 후보를 결정한다는 거였다. 당원과 대의원으로부터 50%, 여론조사결과를 50% 반영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큰 비용을 감안해 100% 여론조사경선을 통해 후보를 확정 지을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그러다 일이 틀어졌다. 100% 여론조사경선을 선택하는 당원협의회가 50대 50 반영보다 많아졌다.

공정하게 이뤄질 것 같았던 여론조사기관의 조사는 그러지 못했다. 예선 통과가 곧 당선이 되는 대구경북에선 자동응답(ARS) 방식의 여론조사 응답률이 전국 평균(5%)의 3배를 웃돌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측에선 조사에 나섰다. 포항에서는 신규 개설한 146개의 유선전화를 선거사무소와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하는 꼼수가 벌어졌다. 시장 출마 관계자들은 그 전화로 특정 시장 후보자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했다. 경주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여론조사 기간 특정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이뤄졌다. 착신 전환 여부는 KT의 적극적인 태도가 아니면 알아내기가 어렵다. '들키는 자가 바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그만큼 만연된 일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인구가 적은 기초단체에선 몇 십 대, 몇 백 대의 전화만 착신 전환해도 당락을 바꿀 수 있다.

경북에서 만난 한 기초단체장 후보는 비보도를 전제로 이런 말을 전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지자 1천 명의 명단을 여론조사기관에 건넵니다. 사나흘 할 일을 하루에 끝내게 해주는 것입니다. 품은 덜 팔고 수확은 낫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착신전화니 대포폰이니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새누리당 중앙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 김재원 부위원장도 매일신문과의 통화에서 "골치가 아프다. 여론조사 때문에 시끄러운 곳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예비후보 자격심사 기간인 3, 4월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엔 수백 건의 이의신청이 접수됐다. 절반 이상이 여론조사에 대한 불만이었다.

◆상처뿐인 경선과 현역 프리미엄

출마 시사→예비후보 등록→공천 신청→경선으로 이어지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경선 경쟁자 간의 마타도어가 도를 넘기도 했다. 정책과 공약만 가지고는 인지도 상승을 꾀할 수 없게 되자 상대방 상처 내기를 통해 이미지 훼손에 나서는 것이다. 새누리당 대구시장 경선에 나선 서상기'조원진 국회의원은 신문, 방송의 토론회에서 감정을 자극하는 말들을 삼가지 않았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이용률이 낮은 경북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흑색선전이 펼쳐졌다. 같은 당으로 공천을 신청한 경쟁자가 어느 때보다 '적'으로 갈라져 서로 상처를 냈다. 본선에서 경쟁해야 할 상대 당 후보에게 공세의 빌미만 제공한 셈이다. 고소고발전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대구경북의 기초단체 29곳(대구 8곳, 경북 21곳) 중 현역 단체장이 출마한 곳은 대구가 6곳, 경북이 16곳이었다. 영주시 한 곳만 빼고 21곳에서 현역 단체장이 이겼다.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기초단체 16곳 중 현역 단체장이 아닌 후보가 선출된 곳은 3곳뿐이었다. 새누리당 대구 기초단체장 경선에서 현역 단체장이 전원 관문을 통과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정치 신인이 경선에 나서 현역 단체장을 꺾을 확률은 이만큼 낮다. 여론조사 반영이 높으니 한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사람을 뽑거나, 이름 뒤에 나오는 직책에 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은 기득권을 내다버릴 수 있도록 도입한 상향식 공천이 오히려 기득권 지키기를 부추기는 룰이 된 셈이다. 장애인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정계 진출은 상향식 공천 속에서 더 어려워졌다. 당이 특정 지역을 사회적 약자 우선 공천지역(옛 전략공천)으로 정하는 방법 외엔 등용 방법이 없다.

금권선거도 여전했다. 서울 강동구청장 후보였던 임동규 전 국회의원은 금품수수 혐의로 후보 자격이 박탈됐다. 경선기간 여러 사람들에게 수백만원을 건넨 혐의다. 인천에서도, 가깝게는 포항에서도 금품 살포 소식이 들렸다. 포항시장 경선에 나선 한 후보 측 선거운동원이 대의원 20여 명을 상대로 20만~200만원의 금품을 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이 후보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치권에선 "차라리 무공천이 낫지 이런 식이라면 상향식 공천은 포장만 그럴듯한 썩은 제도"라고 지적하고 있다.

◆공론조사와 배심원제 도입 검토해야

공천에 탈락한 후보들이 경선에 불복하겠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선관위가 관리하지 않은 당내 경선은 불복이 가능하다는 틈새를 악용한 것이다. 대구 수성구청장 공천에서 탈락한 모 후보는 대구지방법원에 새누리당 중앙당의 공천 확정 행위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성주에선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군수, 도의원, 기초의원 예비후보자 7명이 경선 불복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대구 서구는 당 공천을 받았던 모 후보가 성추행 논란으로 공천이 박탈당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경주에선 당 공천에 반발한 박병훈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다.

특히 칠곡에선 여성 후보로서 가산점까지 받았지만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가 무소속 단일화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도의적 문제는 있을지 모르나 법적으론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상향식 공천이 정당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당에 기여해 온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없다는 불만이다. 검증되지 않은 여론조사만으로 후보를 압축하고 선출하는 것은 선진국에선 없는 일이다.

여론조사와 더불어 공론조사와 배심원제의 장점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론조사는 후보들이 같은 수로 모집한 선거인단에 두 후보의 정보를 제공하고 지지 후보를 정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숙의형 여론조사라고도 한다. 배심원제는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을 배심원들이 토론하며 지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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