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12시간 시차로 대부분 경기가 새벽이나 아침에 열리는데다 세월호 여파까지 겹쳤다. 올해는 거리 응원 계획까지 대폭 축소돼 붉은 옷을 입고 거리를 가득 채운 진풍경을 구경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월드컵 특수를 노렸던 치킨 업계들은 이번엔 조용히 넘어갈 수밖에 없다며 아쉬워하는 반면, 유통 업계에서는 침체된 분위기를 띄워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직까지 조용한 월드컵 분위기…치킨업계·영화관 "응원 특수 기대 안해"
어쩌다가 치킨이 스포츠 경기와 친구가 됐는지 모르겠다. 축구와 야구는 경기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함께 보며 응원하는 재미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치킨이 있었다. 월드컵 한국 경기가 있는 날에 치킨집 전화는 항상 불이 났고, 한 달 매상을 며칠 만에 다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사정이 다르다. H조에 속한 우리나라의 첫 경기는 18일 오전 7시 러시아전이다. 12시간 시차 탓이다. 아침인 것도 모자라 수요일 평일이다. 알제리전은 23일 오전 4시, 벨기에전도 27일 오전 5시다.
치킨 업계는 이번 월드컵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월드컵 경기 시간과 치킨 업체의 영업시간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땅땅치킨은 월드컵 대신 다음 달 있을 대구 치맥페스티벌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땅땅치킨 이상혁 기획마케팅 팀장은 "치킨은 행사를 하면 매출이 바로 발생해야 하는데 현재 아침 경기 시간대로는 월드컵을 겨냥한 행사나 마케팅을 펴기 힘들다. 아무리 치킨을 좋아해도 평일 아침에 시켜먹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나중에 하이라이트 경기를 재방송하는 TV 편성표가 나오면 이를 감안해서 배달 행사를 만들까 생각 중이지만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다 경기를 체크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올해는 영화관 응원 이벤트도 없다. 롯데시네마는 4년 전만 해도 월드컵 중계권을 사서 시민들에게 영화관 응원 행사를 제공했지만 올해는 아예 기획하지 않았다. 롯데시네마 홍보팀 관계자는 "아직까지 시민들의 문의도 없다. 경기가 새벽 시간에 있어서 영화관 응원을 떠올리는 시민들도 적은 것 같다"며 "그나마 기업에서 단체로 월드컵 경기 관람을 위해 대관을 문의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세월호 아픔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거리 응원도 최소화됐다. 대구에서 거리 응원이 계획된 곳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 유일하다. 대구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은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월드컵이 되면 시민들이 모여 응원하는 행사를 열곤 했지만 올해는 예외다. 지난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도 응원하러 모인 사람들로 공원이 꽉 찼었지만 올해는 이 같은 풍경을 볼 수 없다. 코오롱야외음악당 관계자는 "새벽 시간에 응원전을 할 경우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많을 것"이라며 "특히 고등학교 자습시간과 맞물려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새벽 응원전을 열지 않기로 했다. 만약 대표팀이 16강, 8강에 진출한다면 그때는 응원 행사를 고려해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월드컵 길거리 응원은 서울시청 앞 서울 광장에서 열렸지만 현재 이곳에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브라질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는 서울 영동대로를 거리 응원 장소로 검토 중이지만 아직 서울시와 협의하지 못한 상태다. 만약 길거리 응원을 하더라도 4년 전에 비해 축소되거나 아예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직장인들도 출근 걱정 탓에 월드컵 응원을 뒷전으로 미뤄뒀다. 직장인 박상혁(29) 씨는 "보통 월드컵 때는 항상 친구들과 모여 대형 스크린이 있는 호프집에서 응원을 해 왔었는데 이번에는 모이자는 얘기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출근 전 집에서 조용히 응원할 계획"이라며 "흥은 덜 나겠지만 새벽 1, 2시가 아니라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는 점은 좋다"고 말했다. 유럽 축구 리그를 꼼꼼히 챙겨볼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 직장인 김경태 (31) 씨도 "출근 전에 일찍 일어나서 한국 경기는 다 챙겨볼 생각이다.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등 유력한 우승 후보국들의 경기까지 다 챙겨보면 좋겠지만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고민 중"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유통 업계 "월드컵 분위기 살려보자"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 업계는 월드컵을 계기로 세월호 여파로 주춤했던 소비 분위기를 띄워보려 노력 중이다. 한 층 전체를 월드컵 관련 용품과 의류로 도배를 하거나, 월드컵 응원가를 배경 음악으로 틀어 고객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대구점과 상인점을 비롯한 전점에서 이달 15일까지 최대 200명에게 100만원 상품권을 증정하는 'Again 2002! 필승코리아 사은대축제'를 진행한다.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남겨주는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16강 진출 시 100명, 8강 진출 시 200명에게 각 100만원 상당의 롯데 상품권을 제공한다. 롯데백화점 대구 홍보실 관계자는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행사에 참여한 고객 10명을 추첨해 100만원권 상품권을 증정할 계획이다. 최근 침체된 소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월드컵 마케팅을 강화했다"며 "월드컵이 개막하면 이시아폴리스 등에서 고객들이 직접 축구공을 차서 골인하면 경품을 주는 행사도 기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축구 게임을 활용해 월드컵 분위기를 '업'시키는 곳도 있다. 현대백화점 대구점은 이달 14, 15일 오후 2시 유플렉스 지하 2층 광장에서 '풋볼 챔피언십'을 진행한다. 축구 게임인 '위닝 일레븐'을 이용해 사전 응모를 한 고객에 한해 16강 축구 대항전을 벌일 계획이다. 1등에게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신은 동일 모델의 축구화, 2등은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인 '브라주카', 3등은 한국 국가대표 유니폼, 4~8등은 스쿨푸드 식사권을 제공한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유플렉스 관계자는 "13일 월드컵 개막에 맞춰 이 행사를 기획했다. 위닝은 손으로 해도 실제 축구하는 기분이 드는 게임"이라며 "이달 12일까지 참가를 원하는 고객들의 사전 접수를 받아 추첨을 통해 선수 16명을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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