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붉은 악마 회원들 "모두가 힘든 때, 월드컵이 위안·웃음 됐으면"

대구 붉은악마 회원들이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노(29), 김은희(38), 김영아(33), 김정민(35) 씨.
대구 붉은악마 회원들이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노(29), 김은희(38), 김영아(33), 김정민(35) 씨.

브라질 월드컵 개막을 일주일 앞둔 지금, 대구에서 가장 들뜬 사람들이 대한민국 대표 응원단 '붉은악마 대구'가 아닐까. 그들의 설레는 표정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구 동성로에서 붉은악마 회원 5명을 만났다. 예상은 빗나갔다. 그들은 들떠 있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한 모습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축제지만 저희에게는 1년 365일, 축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축제예요. 월드컵은 규모가 조금 더 큰 경기죠."

월드컵 응원을 위해 공동구매한 유니폼과 머플러를 받은 이들은 월드컵을 일주일 앞두고 각오를 다잡는 듯했다. 대구 붉은악마 회장 이은노(29) 씨, 회원 김정민(35), 김은희(38), 김영아(33) 씨로부터 뜨거웠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축구 응원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형 태극기의 추억

대구 붉은악마는 2001년 4월 당시 유행하던 세이클럽을 통해 시작됐다. 놀랍게도 대구의 한 고등학생이 만든 클럽이었다. 이후 월드컵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하나 둘 가입하기 시작했고 2001년 7월 정식 모임을 하고 회장단을 꾸렸다.

시작부터 함께했던 김은희 씨는 "대구 붉은악마를 이야기하려면 '대형 태극기'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고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모든 경기에서 사용되며 온 국민의 가슴을 울렸던 대형 태극기가 대구에서 제작된 것이다. 가로 60m, 세로 40m에 무게만 1.5t에 달하는 초대형 태극기는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중 평가전에서 첫 위용을 과시했다.

태극기는 주문부터 제작, 관리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비용이 가장 큰 문제였다. 1천만원으로 제작하려니 해주겠다는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러다 운 좋게 달서구 소재 한 업체가 인건비도 받지 않고 만들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작 과정도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 모든 제작 과정이 비밀에 부쳐졌다. 붉은악마 회원들도 이 사실을 몰랐고 집행부 일부만이 제작에 참여했다. 바느질 작업이 필요했던 때에는 보는 눈이 없는 새벽 시간대 시청 앞에 모여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언론에 흘려 준비하던 붉은악마는 허탈함을 맛보기도 했다.

태극기 한 장으로 전국 응원을 다 돌아다니다 보니 찢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이탈리아와 16강전을 마치고 광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카메라에 걸려 찢어진 것이다. 제작 업체가 대구에 있으니 대구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 대구까지 돌아와 꿰매는 도중 바람이 불어 가운데가 다시 찢어지기도 했다. 결국 완전 수선까지는 4시간의 대수술이 필요했다. 김은희 씨는 "요즘에도 방송 자료화면으로 나오는 대형 태극기를 볼 때마다 '저거 내가 꿰맸는데!'하며 혼자 뿌듯해하곤 한다"고 말했다.

◆'축덕'들이 축구를 즐기는 법

이들은 스스로를 '축덕'(축구 덕후의 줄임말로 덕후는 어느 하나에 몰두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오타쿠'의 줄임말)이라 부른다. 이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 도시를 방문하는 이유는 단 하나,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단 2시간을 머물더라도 응원하는 팀이 경기를 하면 직접 찾아가야 직성이 풀린다.

김정민 씨는 축구를 좋아한 덕분에 전국 곳곳의 도시를 방문할 수 있었다며 즐거워한다. 김 씨가 응원하는 K리그 팀은 포항 스틸러스. 일요일에 제주도에서 경기가 있다고 하면 일요일 아침 무작정 제주도로 떠난다. 돌아오는 표 걱정은 뒷전이다. 대구로 오는 비행기 표가 없어 부산으로 돌아오게 되더라도 일단 경기를 보는 게 우선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부산에서 배를 타야만 제주도로 갈 수 있었어요. 지금은 여행길이 많이 편해졌죠."

김영아 씨도 2009년 아랍에미리트로 무모한 응원을 떠난 적이 있다. 2009년 포항 스틸러스의 클럽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아는 언니와 여권만 들고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KTX를 타고 서울로 이동해 인천에 도착하니 비행기가 출발하기 10분 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타고 아부다비에 도착해 경기를 관람하고 올 수 있었다. 아부다비 체류 시간은 고작 8시간. 2시간 경기를 관람하고 이동 시간과 출입국 시간 6시간이 전부였다. "다시 인천공항에 도착해 대구로 올 때는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더라고요. 하하."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를 축구 하나만 바라보고 쫓아 다니다 보면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경기가 과열되다 보면 붉은악마가 상대 응원팀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김정민 씨는 2004년 중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이 이기자 중국 응원단 중 한 사람이 의자에 박혀 있던 볼트를 빼 응원단 쪽으로 던져 붉은악마 회원 한 명이 피를 흘리며 나가기도 했다며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런 상황이 자주 일어나자 해외 원정 응원에서는 한국 팀이 이기면 경기가 끝나고 3시간 뒤에야 경호를 받으며 퇴장하는 일도 종종 있다.

김은희 씨는 주변으로부터 "위험한데 왜 하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김 씨는 "'암벽타기는 위험한데 왜 해?'라는 질문과 같다"라고 답한다. 붉은악마 회원들은 수시로 정기 모임을 갖는다. 또 경기가 있으면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 응원을 함께 가기도 한다.

◆브라질 월드컵, 희망과 웃음 줬으면

이들에게 예전 같지 않은 월드컵 분위기에 아쉬움은 당연하다. 세월호 참사에 거리 응원도 조심스럽고, 경기 시간이 이른 것도 응원을 이끌기 힘든 부분이다. 이들은 월드컵이 국민에게 조금이나마 희망과 위안, 웃음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대구 붉은악마 회장 이은노 씨는 "다들 힘든 시기지만 함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월드컵을 응원하면서 슬픔도 함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혼자 즐기느냐, 함께 즐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방식이 어떻든 월드컵을 보며 웃어보기도, 소리질러보기도 한다면 가슴속 무언가가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글 사진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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