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독립운동하고 국어학자로 삶 마친 이희승

"나는 아무리 적은 액수라고 하더라도 남의 물품을 바라고 살지 않는다." "분에 넘치는 생활은 안 한다." "절대로 공짜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간다."

1896년 오늘 경기도 의왕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로, 국어학자로 1989년 삶을 마칠 때까지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은 평생을 이런 생활신조로 살았다. 어릴 적 한문을 배우고 서울에서 외국어 학교에 다니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학교 폐교로 졸업, 여러 학교를 옮겨다니거나 취업하는 등 고단한 시간을 보냈다. 193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어학 및 문학과를 졸업, 학교에서 국어와 국문학을 가르쳤다. 조선어학회에 가입, 조선말 큰 사전 편찬과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작업에도 참여했다. 1942년 일제가 일으킨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년 옥살이를 했다.

일제 패망 뒤 1945년 8월 17일 풀려나자 교수로 후진을 양성했다. 그의 대학강의 노트는 뒷날 '국어학개설'이란 책으로 나와 국어학 전공자의 입문서가 됐다. 또 10년 넘는 노력 끝에 1961년 국어대사전도 펴냈다. 4'19혁명을 맞아 교수시위에 앞장섰고 1965년엔 대구대학 대학원장으로도 지냈다. 우리 말과 글 사랑을 실천하고 지조와 청렴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고 후학을 위해 재산을 내놓았다. '재단법인 일석학술재단'은 그렇게 탄생했고 2003년부터 우수 업적의 국어학자들에게 매년 오늘 '일석국어상'을 주고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고 2012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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