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금모(77) 할머니는 매일 병원으로 전화해 딸의 안부를 묻는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딸 도선화(45) 씨가 만성호흡부전, 폐렴, 뇌수막염 등 각종 질병으로 10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매일 딸을 돌봤지만, 할머니도 당뇨와 함께 지팡이 없이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병원을 자주 가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상태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으면 버스를 타고 언덕 위에 있는 병원까지 20여 분이나 걸어 딸을 찾는다. "우리 딸이 이렇게 누워 있으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제발 딸이 먼저 죽고 내가 죽어야 할 텐데…."
◆단칸방에 살던 여섯 식구
할머니의 인생은 젊은 시절부터 평탄치 않았다. 건설노동자로 하루 벌이를 하던 남편은 일당을 버는 날이면 도박판에서 돈을 날리고, 일이 없는 날은 술만 마셔댔다. 술을 마시고 온 동네를 시끄럽게 뒤집고 다니는 남편 때문에 살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셋방을 살다가 주인에게 쫓겨나기도 부지기수였다.
생계는 오로지 할머니의 몫이었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남의 집 농사일을 돕는 등 품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했다.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며 끼니를 제대로 챙기기도 빠듯한 나날이었다. 심지어 남편은 술을 마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할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참고 사는 게 용하다 할 정도로 우리집 아저씨가 괴롭혀댔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어떻게 살았나 싶어."
남편의 폭력이 할머니에게 큰 불행을 안겨줬다. 할머니가 셋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 남편의 폭력성은 더욱 심해졌고 폭언을 하고 배를 발로 차기까지 했다. 셋째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손가락이 모두 오그라든 채로 태어났다. 그 셋째가 선화 씨였다. "손을 아무리 펴려고 해도 펴지지가 않더라고. 아기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큰일 났구나 싶었어."
◆뇌성마비로 태어난 셋째 딸
선화 씨의 병은 뇌성마비였다. 다른 아이들이 걸을 때가 돼도 셋째 딸은 기어다니기만 했고, 결국 뇌병변장애 1급 판정까지 받았다. 셋째 딸과 막내아들 사이에 두 번의 임신이 있었지만 남편의 폭력 때문인지 배 속에서 아이 둘을 잃었다.
선화 씨는 항상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두 언니와 남동생이 학교를 갈 때도 선화 씨는 홀로 집에서 지내야 했다. 가족을 돌보지 않는 남편 때문에 일을 쉴 수 없었던 할머니는 선화 씨를 두고 집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팠다. "혼자서 기어 화장실에 가고, 밥을 차려두면 어설픈 숟가락질로 끼니는 챙겨 먹었어. 그래도 애가 혼자 집에 있으니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이 성인이 되면서 할머니의 인생도 나아지는 듯했다.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했던 할머니는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식당을 했고 돈을 벌어 아들을 대학에도 보냈다. 두 딸도 자기 밥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선화 씨는 항상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자식만을 바라보며 살던 할머니의 인생은 자식들이 기울면서 다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시집을 간 큰딸은 일찍 남편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둘째 딸도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넉넉지 못한 살림 때문에 힘들어했다.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도 구했던 막내아들은 주식으로 큰돈을 날리고 신용불량자 신세까지 됐다. "어미 인생을 닮아 자식들 인생도 기구한가 싶어서…. 다 내 잘못인 거 같아."
◆아무리 아파도 자식이 먼저인 할머니
평생 일해 온 할머니의 몸은 점점 망가져 갔고, 자신의 인생이 버거워진 자식들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선화 씨만이 할머니 곁에 남았다. 하지만 선화 씨마저 2005년 몸이 극도로 약해지면서 할머니의 근심은 더 커졌다. "갑자기 숨을 못 쉬고 넘어가서 당황했지. 그때도 당뇨가 심해서 내 몸 가누는 것도 힘들었으니 어쩔줄 몰라 하고 있는데 때마침 주민센터 복지담당자가 와서 병원으로 옮겼어."
선화 씨는 기관절개술을 통해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기도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것 외에도 폐렴, 패혈증, 흉막염, 뇌수막염, 요로감염 등 선화 씨의 몸에는 수많은 질병이 생겨났고,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을 오가는 병원 생활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 연금 등 50만원 정도로 한 달을 살던 두 사람은 병원비로 생활이 더욱 빠듯해졌다.
자식들의 연락이 점차 끊기고 선화 씨의 상태도 좋아지지 않자 할머니는 급기야 우울증까지 앓기 시작했다. 당뇨로 인해 혈당 조절이 되지 않으면서 선화 씨를 만나려고 외출했다가 정신을 잃는 등 위험한 상황도 벌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걱정은 자식이다. "딸이 눈에 밟혀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어. 내가 죽으면 선화는 혼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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