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으리'(의리)를 내세운 식혜 광고가 대세다. 광고를 보는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한물간 배우가 '으리'를 내세워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한마디로 뼛속까지 의리로 뭉쳐진 배우이기에 가능했다. 위트 만점인 광고가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옛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친구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관계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주위에 의리로 맺어진 친구가 많았다. 정선은 인왕산 자락 순화동에서 진경시(眞景詩)의 대가인 사천 이병연(1671~1751)과 선비이자 화가인 관아재 조영석(1686~1761) 등 당대를 풍미하는 학자들과 이웃해 살았다. 그들은 학문과 화풍을 서로 교류하면서 조선 후기의 예술을 풍요롭게 살찌웠다.
조영석은 정선보다 10세 연하이면서도 서로 존경하며, 그림과 시를 논하는 벗으로 지냈다. 조영석이 남긴 문집에는 정선의 어려웠던 생활환경, 원만한 성격, 성실한 생활태도, 진지한 인품, 뜨거운 학문적 열성, 뛰어난 화가로서의 높은 명성 등을 기록해 놓아 정선에 대한 알짜배기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정선의 옆집에는 이병연이 살았다. 그는 성품이 맑고 넓었으며, 시는 강건하고 웅장하여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조영석에 따르면 '정선은 여행을 좋아했다'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순례하며 명승지를 관찰하고 여행을 통해서 얻은 지식과 조선 산천의 수려함에서 받은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정선과 함께 금강산에 오른 이병연은, 정선이 그림도구는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산천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달랐던 정선은 '진경산수'라는 개성적인 조형언어로 번역해낸다. 진경산수가 실경을 수차례 관찰해서 마음에 우러나온 화가의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실경산수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을 일컫는다.
정선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수많은 금강산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 59세 때 그린 '금강전도'는 소름이 끼칠 만큼 엄숙하면서 화려하다. 금강산의 골격과 정수만 모아 놓아 금강산을 가보지 않아도 금강산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런 표현을 얻기까지 얼마나 깊이 관찰하고, 반복해서 금강산에 올랐을까. 금강산의 맥을 마음속 깊이 각인시켜 작품화했을 화가의 태도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이 흘러도 빛나는 것이 있다면, 친구 간의 의리가 아닐까. 정선이 84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그림에 원숙한 경지를 유감없이 쏟을 수 있었던 것도, 정신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리는 고층빌딩처럼 '으리으리'하지 않아도 좋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반딧불만 한 크기로도 족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재산, 그것이 의리이다.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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