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名 건축기행] <24>방천시장

골목벽에서 김광석이 부릉∼ 부릉 달려왔다

김광석길은
김광석길은 '퇴락해 가는 시장에서 문화를 짓는다'라는 어려울 것 같았던 테마를 가능케 한 대표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문화와 시장을 접목시킨 관계자들의 노력은 물론 예술을 흠모한 시민들이 그 주역들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방천시장에 세워진 김광석 동상.
방천시장에 세워진 김광석 동상.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김광석길이 있는 방천시장은 6'25전쟁 때 신천변을 따라 천막점포들이 자리 잡으면서 쌀과 소금 그리고 식재료 등의 도'소매 시장이었고, 한때 1천여 개의 점포가 두부공장, 콩나물공장 등과 함께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곳이다.

그러나 이 시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대구시의 도시 확장에 따른 달구벌대로와 신천대로의 건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일어난 도심의 아파트 개발붐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슈퍼와 마트로 인해 점점 축소되었고,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하나의 섬처럼 고립되어 겨우 점포 60여 개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자구노력의 하나로 2009년 초, 시장의 활용과 공간의 재해석이 시급해졌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의 변화를 시도한 예술가들이 참여해 '별의별 시장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이어 국가에서 전통시장활성화 시범사업으로 시행한 '문전성시사업'(전국의 소멸되어 가고 있는 전통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문화부 주관, 문화를 통해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사업)에 선정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2009년에 시작한 1차 문전성시 사업은 우선 지역 예술가와 시장상인들 간에 일촌맺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공공예술작업을 통해 시장 환경을 개선하고 판매물품과 매대 정리, 그리고 상인들의 의식교육과 고객 쉼터, 어린이 놀이공간 등 서비스 공간의 확보와 단장으로 시작되었다.

그 평가가 좋아서 2010년에 2차 사업이 연장 지원되었고, 그 개념은 예술가와 상인이 있는 시장, 문화시장으로서 더 특화시키고 방문 인구를 증가시켜 대구의 명소로 만들기로 했다. 이때 시장 환경에 가장 큰 저해요소 중 하나인 신천대로 옹벽에 면한 방치된 길을 의논하다가 공공디자인개념을 적용, 이야기가 있는 걷고 싶은 길을 조성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자란 가수 김광석이 대두되었고, 가칭 '이야기가 있는 벽'으로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즉 '김광석길'이 탄생한 것이다.

이전에 그 길은 쓰레기가 쌓인 좁고 어두운 길이어서 밤에는 물론 낮에도 지나기가 불편한 곳이었다.

김광석은 시장과 인접한 대봉동에서 태어났고, 그의 삶 자체가 극적이며 예술가의 삶과 흡사한 면모를 보여주었던 점, 또한 그의 노랫말 대부분이 삶의 다양한 모습과 인생사를 이야기하여 젊은이는 물론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두루 좋아하는 대중성과 지속성을 가진 스타였으며, 그의 삶 자체가 크게 내세울 것 없는 서민들의 삶과 공통점이 있어 전통시장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리하여 김광석의 노래와 상인들의 삶, 그리고 방천의 장소성과 역사를 담아 참여 예술가들이 316m 길이의 벽에 작품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김광석 벽화 등장, 명품 골목길로

김광석. 그를 다시 이곳에 불러낸 의미는 무엇일까. 가수로서 그는 요절하였지만, 아직도 그의 노래가 끊임없이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걸 되묻는 작업도 아울러 진행되었다. 시장의 역사, 상인들의 이야기, 방천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여 김광석의 노래와 연계시키려 하자, 젊은 예술가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콘크리트 옹벽에 조형물과 페인팅, 설치미술을 통해 환경개선과 예술 시장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자는 계획에 흥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 처음 시작할 때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여기서 과연 무얼 어떻게 얼마나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의문이 있었다. 총괄계획가로서 문화부에 기획서를 쓰고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의욕이 가득했지만 상인들과 지역 예술가들의 간극, 첨예한 사안들 모두 미지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광석길'은 대단한 이슈가 되었다. 참여한 작가들 즉 조명연구가, 디자이너, 설치미술가, 공예가, 조각가, 화가, 카툰 작가, 사진가 등 장르별로 2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총 17명이 김광석의 곡을 각자 선정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해석하여 작업하였다. 결과적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소재의 별스러운 표현들이 길을 따라 이어져 멋진 볼거리를 선사하게 되었다. 방치되어 쓸모없던 도시의 길이 생명을 가지고 재생하였고 김광석은 부활했다.

김광석은 생각보다 많은 곳, 여러 사람에게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시의적절하게 김광석 추모콘서트가 경북대학교 강당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라는 이름으로 공연되었고 그 자리에서 '김광석길'이 태어난 방천시장의 예술벽화와 작가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퇴락해 가는 시장에서 문화를 짓는다, 근대를 되살려 낸다'라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던 테마를 가능케 한 것은 문화와 시장을 접목시킨 관계자들의 노력은 물론 예술을 흠모한 시민들의 호응이 아니었을까.

도시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산재해 있다. 우리가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방천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다. 지역의 예술가들이 그것을 방천에서 새롭게 찾아냈고, 이야깃거리로 만들었다. 시장으로서가 아닌 새로운 모습의 명소로 바뀌어 아쉬움도 있지만, 남녀노소 그리고 밤낮 구분없이 사람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이다. 방천의 역사가 새롭게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쓰레기더미에서 건져 올린 보석'이 된 것이다.

건축의 장소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장소만의 특별한 정체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정체성이 사람들을 모으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를 담기 위해 또 새로운 공간은 창조된다. 그 결과의 한 사례로서 방천에는 또 머지않아 '김광석 야외 콘서트장'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방천시장에 한번 와 보시라. '김광석길' 입구 벤치에 앉자 기타를 연주하는 김광석의 좌상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특유의 미소로 방문객들을 환영하듯 노래 한 소절도 듣게 될 것이다.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글=이정호 경북대학교 교수'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 총괄 계획가

사진=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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