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탐식과 비만

6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탐식'(貪食)을 오만, 질투, 분노, 슬픔, 인색, 성욕과 함께 '칠죄종'(七罪宗'그 자체로 죄악이며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7대 죄악')으로 꼽았다. 그는 탐식을 "식사시간 이외에 먹는 행위, 생리적으로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거나 마시는 행위, 탐욕스럽게 먹는 행위, 사치스러운 음식이나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는 행위"로 정의하고 감각 기능의 약화, 지나친 수다, 음란함을 초래하는 주범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의 시각은 다르다. 죄악이 아니라 인류 생존투쟁의 부산물이란 것이다. 인류는 최초 출현 이후 20세기 초 공중질소고정법의 발견에 따른 '제2의 농업혁명'이 있기 전까지 700만 년 동안 줄곧 기아상태에 있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운 좋게 오늘은 굶지 않았다 해도 그런 날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에 대응해 인류는 먹을 수 있을 때 가능한 한 많이 먹고 여분의 에너지는 굶을 때를 대비해 신속하게 몸속에 축적하는 생화학 시스템을 발달시켰다. 문제는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한 '포식(飽食)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우리 몸은 여전히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700만 년에 걸쳐 진화된 잉여 에너지 축적 시스템을 포식의 시대에 맞춰 개수(改修)하기에는 질소비료 개발 이후 지금까지 100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그 결과가 우리 배 주변에 붙어 있는 지방 덩어리 곧 비만이다. 결국 비만은 생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기초대사량) 이상을 섭취하고 이를 운동 등 다른 활동으로 연소시키지 않을 때 생겨나는 필연적 결과다. 물론 유전자 이상에 따른 질병성 비만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유럽 최고법원이 비만을 장애로 인정해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과체중을 이유로 해고된 한 덴마크 남성이 낸 소송과 관련해 덴마크 법원이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최종 판결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지역기관에서 어린이를 돌보는 일을 해온 이 남성은 비만 때문에 몸을 구부려 어린이의 신발끈을 묶어주지 못하는 등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본인은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비만은 개인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장애'인가 아니면 탐식의 결과이자 자기관리를 하지 못한 게으름의 징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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