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홀로 남을 딸 걱정 때문에 두려워요."
전미영(42'가명) 씨는 8년째 암과 싸움을 하고 있다. 유방암에서 시작된 암세포는 지난해 뼈와 림프절까지 전이됐고, 끊임없는 항암치료로 몸을 추스르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전 씨의 걱정은 항상 중학교 3학년의 딸 걱정뿐이다. 혹시 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홀로 견뎌야 할 딸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엄마라고 해준 것도 없는데 아프기만 하고 괜히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해요. 한창 하고 싶은 게 많을 나이인데도 반항 한 번 안 하는데 그게 더 마음 아파요."
◆빚 갚느라 보낸 젊은 시절
전 씨의 결혼은 처음부터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을 중매로 만났고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하게 됐다. 남편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돈이 필요하면 남편은 시댁에 항상 손을 벌렸고, 생계는 거의 전 씨의 몫이었다. 딸이 4살 되던 해 전 씨는 남편과 갈라섰다. 책임감 없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시댁에서 동의도 없이 전 씨의 이름으로 사채를 빌려 쓰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다.
남편과 헤어졌지만 사채는 고스란히 전 씨의 몫이었다.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전 씨의 직장에 사채업자들이 빚 독촉을 하러 찾아오는가 하면, 전 씨 가족들에게도 협박을 일삼았다. 이때부터 전 씨는 딸을 기르며 빚을 갚기 위해 정신없이 살기 시작했다. "딸을 어린이집에 밤 9~10시까지 맡겨두고 일만 해댔어요. 그마저도 직장에 사채업자들이 찾아오는 통에 한 군데 오래 일하지도 못했죠."
사채 빚은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영원히 갚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전 씨 이름으로 돈을 빌린 곳이 미등록 대부업체인 점이 인정돼 원금만 변제한 뒤 빚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제야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죠. 내가 열심히 벌면 아이와 둘이 사는 건 자신 있었어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넘쳤고요."
◆암이 앗아간 모녀의 행복한 삶
두 모녀에게 먹구름이 드리운 건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다. 그해 여름 전 씨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가슴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고 수많은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견뎌냈다. 모두 딸을 위해서였다.
다행히 미리 준비해뒀던 보험으로 수술비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지던 전 씨가 암 투병을 하면서 생활은 점점 어려워져 갔다.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받게 됐지만 한 달에 60만원 남짓한 수급비로 생활비와 병원비를 감당하기는 벅찼다. "생활비에 보태려고 중간중간에 컨디션이 괜찮으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것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이 끊길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마저도 할 수 없었죠. 부족한 병원비나 생활비는 여동생에게 빌리면서 생계를 이어갔죠."
다행히 전 씨의 상태는 점점 좋아졌고 두 가족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전 씨는 가슴뼈가 저릿하게 아파오는 걸 느꼈고, 병원에 갔더니 암세포가 뼈는 물론 림프절까지 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다시 암이라는 몹쓸 병이 모녀의 삶을 어둡게 만들기 시작했다.
◆학원조차 보내줄 수 없는 엄마의 슬픔
암세포가 전이되면서 전 씨의 건강은 이전보다 급격하게 나빠졌다. 뼈에 암세포가 퍼지면서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걷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됐다. 게다가 유방암은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전이 이후 전 씨는 평생을 암과 함께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됐다. "병원에서도 독하게 완치는 없을 거라 말하더군요. 암과 함께 몸 관리를 잘해가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요."
장기간의 투병으로 경제 상황도 더욱 팍팍해졌다. 전 씨는 너무나 가슴 아픈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10년 가까이 딸이 배워온 피아노 교습을 끊는 것이었다. 1시간 거리의 병원을 항상 버스를 타고 다니더라도 딸이 좋아하는 피아노만은 계속시켜주고 싶었다. 지난 2월 피아노를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을 안 딸은 서럽게 울었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아프다 보니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아이인데 그날은 많이 울었어요. 저도 같이 울었죠"
전 씨의 꿈은 단 하나다. 짐이 되지 않으면서 아이가 어른으로 커가는 걸 보는 것이다.
"딸이 대학에 가고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하고 손자를 봐주는 할머니가 되는 평범한 삶이 저에게는 그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는 꿈이 됐어요. 아이가 착하게 자라주고 있는데 내가 사라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너무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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