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을 감추려고 더욱더 잔인하게, 또 거칠게 상대를 제압하는 형사 지욱(차승원)의 눈물겨운 사투가 담긴 영화 '하이힐'은 포스터, 예고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화려한 액션이 눈길을 끌었다. 본 영화는 그 강도가 더했다. 하지만 극 중 지욱의 행동과 폭력성이 거칠어져 갈수록 관객의 연민은 더해갔다. 숨겨진 비밀 때문이었다.
마초적인 분위기인 차승원의 액션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그의 건강미 넘치는 몸매와 근육을 본 적이 많지 않았던가. 그런 매력은 액션을 통해 감각적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하이힐'은 여성적인 섬세함도 표현해야 했던 영화다. 외피에 감춰뒀던 내적 욕망을 끄집어내야 했다. 영화는 여성성을 감추고 있던 마초 형사의 '커밍아웃'을 다루고도 있기 때문에 남성적인 것과는 반대되는 섬세한 표현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누군가는 연출자의 힘이 가장 크다고 하겠지만, 그 연출자의 의도를 표현해내는 건 연기자다.
장진 감독은 그 주인공으로 배우 차승원(43)을 택했다. 의외일 수밖에 없다. 차승원 본인도 처음에는 놀랐다. "아니, 왜 나에게 여장을?" 그가 처음 제의를 받고 거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차승원은 "장진 감독이 '내가 본 당신이라면 충분히 지욱을 연기할 수 있다'고 했다"고 캐스팅 당시 이야기를 전했다. "사실 처음에는 한 차례 거절했었는데 '장진이라면 잘 만들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찍을 때 황정민 씨가 '승원 씨는 내게 없는 걸 가진 것 같다. 약간의 여성성?'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 얘기를 들었고, 장진 감독도 '이건 자기밖에 못 해'라고 하니깐 해야 할 것 같았죠. 하하."
장진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달 3일 개봉한 영화는 흥행 면에서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시도 자체는 추어올릴 만하다. 누가 '감히' 차승원으로부터 여성성을 끌어올리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물론 차승원은 출연에 응했어도 조심스러웠다. "관객이 받아들인다면 '이런 영화도 만들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자칫 잘못하면 재수 없는, 거부감을 부르는 이상한 쪽으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사람의 관점은 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 줬을 때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후회 없어요."
참고 작품은 태국 영화 '뷰티풀 복서'다. 영화는 남자 킥복싱 선수였다가 성전환 수술을 한 농툼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뷰티풀 복서'를 보며 이상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특히 주인공이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꼭 딸과 엄마의 대화 같은 느낌을 주더라고요. '하이힐'에서 그런 느낌이 나도록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그의 여성성에 대해 생각해 봤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결혼 생활을 오래 했으니 아무래도 있지 않을까요.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특히 요즘 눈물이 정말 많아졌어요. 이제는 강렬한 눈빛을 하고 무게 잡으며 다리 꼬고 앉아 있는 자세도 불편해요. 유치한 것 같고요."(웃음)
장진 감독과는 '박수 칠 때 떠나라'(2005), '아들'(2007)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이다. 솔직히 이번 영화는 장진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고 하자 차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중간 재기발랄함이 보이지만 기존 장진 감독의 영화와는 다른 선을 달리는 느낌을 받는 관객이 많다. 차승원도 인정하는 투였다.
"'하이힐'이 장진 감독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죠.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이 영화는 장진 감독에게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다음에도 하자고 하면 함께할 거예요. 그런데 장진 감독이 안 한다고 하면 어쩌죠?"(웃음)
차승원은 장진 감독의 연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제 재기발랄할 나이는 지났다"며 "장진 감독이 이런 것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고 대변했다. 그러면서 "장진 감독은 작가로서 역량은 의심할 게 없다"고 추어올렸다. 흥행이 됐으면 좋았겠지만 안 됐어도 장진 감독을 향한 믿음은 크다.
그는 "사실 장진과의 작업은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이건 무슨 반전인가?'라고 생각할 즈음 그는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라 불편하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오래된 동갑내기 친구이자 동료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장진 감독 앞에서는 내 치부를 다 들키는 것 같아요.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니 액션도 악다구니로 할 수밖에요. 하하. 하지만 그런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더 연기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극 중 거친 액션은 대역 없이 손수 했다. 아니, "대역을 쓸 수 없었다"며 또 한 번 웃었다. 차승원은 "촬영 현장에 내 대역이라고 왔는데 모두 나보다 작더라"며 "대역 친구들이 발을 뻗었는데 짧으니 너무 티가 났다.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했다"고 떠올렸다.
차승원은 현재 SBS 수목극 '너희들은 포위됐다'로도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그는 "이 드라마를 택한 이유는 '20부를 통틀어 내가 얼마만큼 많은 얼굴을 보일까'였다. 그것 하나만 믿고 참여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내 안의 많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했다. 이승기와 고아라 등 "후배들과의 호흡도 좋다"고 즐거워했다.
자신이 코미디를 "격하게 좋아한다"고 언급한 차승원은 "이승기는 코미디 감각이 특출나다. 심각한 신을 찍기 전 리허설을 할 때 사람들을 웃기기도 한다. 나중에 예능이나 드라마를 또 같이 하고 싶다"며 이승기를 향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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