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이 없었다.
서른여섯에 도의원, 마흔에 군수, 마흔둘에 인구 300만 명에 이르는 경상남도의 수장인 도지사, 그리고 마흔여덟의 나이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대권후보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승승장구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김태호(52) 의원은 2010년 8월 29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지 21일 만에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 이상 누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총리 후보직을 사퇴합니다"라며 스스로 총리 후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짐을 싸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김해 보궐선거에 나서 국회에 들어왔다.
김 의원은 총리 후보 낙마 과정은 '데자뷰 현상'처럼 되풀이 되고 있다. 박근혜정부 들어와서도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낙마했고, 안대희 전 대법관도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시 문창극 총리 후보자도 자진사퇴의 길로 접어든 상태다.
"요즘 문 후보자와 안 후보자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7'14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자들이 잇따라 검증의 덫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처럼 온갖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진사퇴 위기에 몰려 있는 문 후보자에 대해 국회 인사 청문회에 세워서 소명하고 검증하고 국민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여론으로 밀어붙여 자진사퇴하라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정치인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 후보자가 다시 낙마할 경우, 문 후보자를 지명한 박 대통령과 검증 책임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았다.
그는 4년여 전 자신이 총리 후보직에서 자진사퇴하게 된 것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대응을 잘 못했지만 기본적인 정치적 신념과 철학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한마디로 내공이 부족한 때문"이라면서 "아팠지만 제게는 약이 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치를 하려면 어떤 각오와 책임이 필요한 것인지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 당시 정치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각되는 데 대한 당 내부의 갈등도 굉장히 심했고, 박 대통령 쪽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않았다. 그런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준비가 덜 됐다는 점이다. 도지사를 하면서 대북문제와 환경, 여성문제,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한 전략 등을 준비했지만 다 보여주지 못하고 사장시켰다. 앞으로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하나씩 생기게 될 것이다."
당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게 '다른 장관은 다 포기하더라도 김태호 총리 카드는 통과시켜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김 의원은 자진사퇴 카드를 집어들었다.
"당내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고, 무엇보다도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민심이 돌아선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당시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를 보니 63%가 반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저는 '태호야 왔나' 하며 반겨주는 민심 속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임태희 비서실장을 만나 사퇴의사를 밝히고 이 시간 이후에는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 하고 사퇴하는 날까지 잠적했다. 그날 따라 왜 그렇게 비가 많이 오던지, 마구 때리더라."
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그는 오래지 않아 김해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 어느새 재선 의원이 됐고 그 사이 지난 대선 때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나서 박 대통령 등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치인 김태호'로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필수다. 김무성, 서청원 의원 등 쟁쟁한 선배들이 각축하는 7'14 전당대회에 그도 출사표를 냈다.
그는 "무능하고 고장 난 정치가 대한민국을 세월호의 참사 속에 빠뜨렸다"며 미래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새로운 틀을 만드는 '진짜 혁신'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대통령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의 개헌을 내걸었다.
"대통령의 국가 대개조는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국민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없는 국가가 무슨 국가냐'라고 묻는다. 무너진 국가 시스템과, 이것을 보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하고 방기한 정치권의 무능이 가장 큰 문제다. 고장난 구조 자체는 지금과 같은 패권적 진영논리와 그 진영논리를 강화시켜주고 있는 승자독식의 권력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없다.
5년 단임과 소선거구제, 이런 권력구조는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이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저는 그 대안으로 4년 중임 정'부통령제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절실하다고 본다.
지금 개헌문제를 내세우면 경제도 어려운데 블랙홀로 작용할 것 아니냐는 것이 정부의 시각인데 나는 거꾸로 보고 있다. 지금 개헌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분갈이해줘야 할 화분을 그대로 두고 계속 가겠다는 것과 똑같다. 오히려 박 대통령이 앞장서서 개헌문제에 나서는 것이 국가 대개조의 출발점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국회의원의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하자고 주장하는데 현실성이 있는가.
"그렇게 인기도 없는 공약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정치개혁이 절박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봐줬으면 좋겠다. 국민 세금 축내고, 부패한 정치인이 있다면 2년 안에 잘라야지 재판하면서 이리저리 시간을 끌어서 세금 축내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선거를 자주 하면 짜증 난다고도 하고, 선거비용 문제도 지적한다. 그렇지만 예산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투자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
2년마다 깨끗한 정치인을 계속 충원하면 지금의 낡은 시스템이 더 빨리 개선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2조원 정도 든다고 한다. 그 밖에 수많은 사회적 시스템 부족으로 인해 수십조원이 들어가는데, 이는 정치적 구조의 낡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히려 부패 정치인들을 빨리 퇴출시키고 새롭게 수혈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미국 하원의원도 임기가 2년이다. 자식들에게 과외시키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듯이 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혁신은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분들을 보면 전대를 거쳐도 새누리당이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진짜 혁신과 가짜 혁신의 기준은 서청원 김무성 두 분이 사퇴하고 김태호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국민들이 봤을 때 '진짜 새누리당이 변하는구나'라고 봐줄 것이다. 실제로 그 정도가 돼야 혁신이다. 지금 두 분이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고 세몰이, 줄세우기 등 구태로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 이름을 팔아서 마케팅하고, 계파와 파벌 뒤에 숨어서 이득을 보려는 생각으로 과연 혁신을 할 수 있을까,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혁신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 혁신이다.
진짜 혁신은 국민의 뜻을 바탕으로 혁신의 '액션' 프로그램을 가진 사람만이 해낼 수 있다.
50대는 우리 사회의 중심이다. 3040세대와 6070대 세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아우를 수 있는 허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도 있다.
시진핑, 리커창 등 중국 지도자들도 다 밑바닥부터 민심을 읽고 서민의 아픔을 알고 그렇게 성장한 지도자들이다. 우리 당의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도 5선 국회의원이지만 중앙정치 무대를 떠나 광역으로 갔다. 거꾸로다. 그도 민심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정치공학적 정치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서 민심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본다.
저는 도지사 두 번과 군수, 도의원을 했다. 논두렁 밭두렁으로 다녔고, 시장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서민의 아픔과 분노를 같이 느끼고 함께 부둥켜안았다. 중국도 그렇듯이 민심의 현장을 실제로 아는 경험을 가진 정치인이 많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민심의 바탕에서 혁신할 수 있는 비교우위가 있다."
-당내 계파 간 갈등과 대결구도를 청산할 수 있을까.
"제가 당을 이끌게 되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대통령의 성공이 국민의 성공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처럼 계파정치하고 대통령 이름 팔아 덕보는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성공하는 데 걸림돌이다.
이제 당은 청와대 눈치 보지 않고, 권력의 눈치 보지 않고, 국민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사회개혁을 주도해가는 것이 제대로 된 국민정당의 모습이다. 그것은 공천권을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을 공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제가 대표가 되면 공천제도 개혁부터 하겠다.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아마도 김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 성적과 관계없이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미래를 향해 계속 달려갈 것이다.
"농민이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열심히 땀을 흘리며 잘 가꿔야 가을에 제대로 결실을 맺게 된다. 그 과정 없이 나오는 열매는 없다. 지난 1, 2년 동안 언론에 별로 노출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공부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노력들을 해왔다. 김태호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변화와 혁신에 있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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