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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문창극-일본도 반갑지 않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글)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사람은 언어를 활용해 사유하는 존재이며, 생각도 일종의 언어이다. 사유는 그가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의 생각 깊이를 가늠하는 척도라는 의미이다. 의인의 언어는 의롭고, 악인의 언어는 악하며, 비겁자의 언어는 비굴한 것이다. 중국의 당서(唐書)에도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들고 있다. 그리고 언어는 존재를 새롭게 창조하기도 한다. 존재가 있고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 언어가 아니라, 그 존재에 대해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존재의 본질과 특성을 규정하게 된다. 5'16을 혁명이라고 쓰느냐, 쿠데타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5'16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말과 글을 읽고 참담함을 느낀다. 그의 글과 말을 재구성하면 이런 뜻이다. 우리 민족은 원래 게으르고 미개한 DNA를 가졌다.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일본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의 시련을 주셨다. 해방 후에는 일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의 부산물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을 모셔오고, 친일 귀족인 윤치호와 영국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을 끌어들였다(비숍은 조선 관리들을 비판했으나, 조선인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비난이 들끓자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견해를 밝혔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 안에서 한 역사의 기독교적 해석이며, 조선인 비하는 윤치호와 비숍의 글을 인용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1독립선언문 서명자 33인 가운데에는 이승훈을 위시해 기독교인이 16명이나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가장 반대한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리고 남의 글 인용은 자기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논리 전개의 한 방식이다. 그는 하나님과 윤치호, 비숍의 이름을 빌려 자기의 주장을 더욱 정당화하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는 억울하다며, 국민에게 자기의 진의를 밝힐 청문회를 요구한다. 이미 텍스트가 나와 있는 이상, 아무리 포장을 잘하여도, 그의 해명은 자기 기만(欺瞞)이며, 진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의 언행은 국제화되고 있다. 중국의 민주화와 기독교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중국은 불쾌해한다. 내정 간섭 수준이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한국을 조롱하고 있고, 정부는 곤혹스러워한다고 전해진다. 며칠 전 주한 일본 영사가 연구실에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문창극 사태에 대해 언급했다. 실은 일본 정부도 반갑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문창극 내각'이 성립하면, 한일관계에 두 가지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창극 총리'는 식민지 사관의 주홍글씨를 지우려고 일본에 무리하게 국수적인 강경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문창극 내각하에서 이루어지는 한일관계는 친일적인 그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오해받아, 한국인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한일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이다.

문창극 사태는 국내외적으로 참극(慘劇)을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그는 버티는 것 같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돌아오는 21일까지 열심히 청문회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대통령이 귀국하고 그의 거취도 결정되었을지 모른다.) 대통령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일까. 이 또한 비난받을 일이다. 대통령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민심은 천심, 즉 '하나님의 뜻'이다. 진정으로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바란다. 청와대도 제2의 문창극은 발탁하지 말아야 한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이 지면을 통해 약 3년 6개월에 걸쳐 매일신문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1년간 연구년을 떠납니다. 지면을 할애해준 매일신문과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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