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공은 둥글다?

축구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공은 둥글다'라는 것이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공처럼 어느 팀이 이길지 모른다는 뜻이다. 강팀이 매번 이기면 재미가 없다. 약팀이 강팀을 물고 늘어지고 혼쭐을 낼 때에 관중들은 최고의 쾌감을 얻는다. 영국, 프랑스에서 한 번씩 조기회 수준의 3, 4부 리그 팀이 유명한 1부 팀을 연파할 때면 온 나라가 들썩이곤 한다. 어디서나 약자가 강자를 꺾을 때 흥분이 배가되는 모양이다. 축구를 통한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그런 면에서 축구는 '이변의 스포츠'다. 월드컵 같은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숱한 이변이 일어났고 그것이 재미를 더해준다. 월드컵 역사상 최대 이변으로 꼽히는 것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미국에 0대1로 패한 경기였다. 축구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던 잉글랜드는 그 대회에 처음 참가했다가 최약체 미국에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그다음 이변은 남'북한이 연출한 경기가 아닐까 싶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대0으로 완파하고 8강에 진출한 것도 그 누구도 예상 못 한 결과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홈그라운드의 한국이 4강에 오른 것도 이변 중의 이변이다.

어제 우리 대표팀이 알제리에 2대4로 참패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깨지고 나니 대표팀 구성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2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뛰었던 '홍명보의 아이들' 12명을 선발할 때부터 '의리 논쟁' '패거리 논쟁' 같은 이런저런 얘기가 있었지만 홍명보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에 곧 사그라졌다. 누구나 홍 감독은 예전 감독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믿어왔다. 과거 어떤 감독은 축구계 실세들의 뜻에 따라 선수를 선발했다거나, 어떤 감독은 특정 지역이나 자신의 모교 출신 혹은 특정 종교를 가진 선수들을 선호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를 뛰어넘은 유일한 감독이 히딩크였다. 배경은 전혀 보지 않고, 오직 실력과 자신의 지도력에 따를 수 있는 선수만 뽑았기에 4강 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트루먼 전 대통령은 '축구감독이 대통령보다 훨씬 더 힘든 직업'이라 했는지 모른다.

'공은 둥글다'라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 팀에게만 붙일 수 있는 말이다. 27일 벨기에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공은 둥글다'라는 말을 확인할 수 있는 경기가 됐으면 좋겠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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