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학도병의 편지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다녀왔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했고, 그해 8월 마침내 낙동강에 이르렀다. 북한군은 대구의 관문인 다부동 전선에 5개 사단 병력을 투입하여 집중 공세를 펼쳤다. 이에 맞서 아군은 살인적인 더위를 무릅쓰고 북한군과 무려 55일 동안이나 치열한 공방전을 펼쳐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다부동 전투가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수도인 파리를 위기에서 구했던 뵈르덩(Verdun) 전투에 비유되기도 하는 이유이다.

기념관은 조용했다. 탱크 모양의 기념관 주변에는 전투기나 전차 등이 전시돼 있고, 참전 용사와 경찰관 이름이 새겨진 충혼비가 세워져 있었다. 당시의 사진들을 둘러보다가 눈이 딱 멈추는 곳이 있었다. 군번도 없이 총을 들고 전쟁에 투입된 소년들이었다. 15세 전후의 어린 학도병들은 연합군이 올 때까지 무려 11시간이나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며 혈전을 벌였다. 얼마나 절박했던지 10살 남짓한 아이들에게까지 사제 수류탄을 쥐여주며 등을 떠밀었다고 했다.

학도병 징용에서 낙오된 소년들은 보국대로 강제 동원되었다. 지게에 포탄과 식량을 짊어지고 전방고지로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사진 속의 소년은 지쳐 보였다. 위험한 무기와 주먹밥을 싣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니 울컥했다. 충격적이었다. 전쟁터에서 무기를 나르는 일은 화약을 지고 불 속을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운반 도중 잘못되어 사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하니 그것이 어찌 인간이 할 짓이던가.

총탄의 위협을 느낄 때에도 주먹밥만은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다는 걸로 보아 그 일에 목숨을 걸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배고픈 군인들이 허겁지겁 꺼내 보면 정작 밥에는 구더기들이 잔뜩 엉겨 붙어 있었다고 했다. 대충 털어내고 먹을 수밖에 없는 군인이나 죽음을 무릅쓰고 식량을 나르는 소년에게 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

기념관을 나오니 6월의 햇살이 눈을 찌르듯 따가웠다. 멀리 유학산과 가산산성을 바라보며 한국 최대의 격전지였던 그날의 현장을 가늠해 보았다. 벤치 앞에는 학도병이 쓴 편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모른 채 산화한 어린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였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샘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습니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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