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구라고 해서 놀기만 하면 안 되는 기라. 무슨 일이든 해야 오래 살 수 있제. 작은 바느질 봉사지만 몸도 건강해지고 기분도 좋기만 하제."
대구 달서구 대곡동 청구아파트의 한 가정. 도르륵~ 도르륵~. 재봉틀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한 분이 발로 재봉틀 발판을 밟으며 열심히 박음질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벙어리장갑이다. 할머니는 미리 장갑 모양으로 재단한 천을 재봉틀 위에 올려놓고 천 가장자리를 튼튼하게 박음질했다. 재봉틀 옆에는 완성된 벙어리장갑 20여 장도 보인다. 할머니는 30여 장 더 만들어야 한다며 손을 바삐 놀렸다. 할머니는 장갑 모양 두 장의 천을 뒤집어 박음질하고는 미리 만들어 둔 끈을 부착했다. 예쁜 벙어리장갑이 탄생했다.
재봉틀로 벙어리장갑을 만드는 이는 바느질 경력 50년이 넘는 원궁자(83) 할머니다. 고령임에도 얼굴이 고운 원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벙어리장갑을 중증장애인 시설에 갖다줄 거라 한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일부 장애인들은 맨손으로 두면 얼굴을 할퀴어 생채기를 내는 경우가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벙어리장갑을 손에 끼워준단다.
"난 지금껏 한 번도 바느질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았제. 평생 바느질을 익힌 재능을 썩힐 수는 없고 그냥 남에게 뭔가 보탬이 되어야 되지 않겠나."
원 할머니는 벙어리장갑 외에도 장애인용 오줌통 보자기도 만들고 있다. 사각 모양의 오줌통 보자기는 오줌을 못 가리는 장애인들의 허리에 채우는 오줌통이 보이지 않게 감싸기 위해서다. 원 할머니는 오줌통 보자기도 40여 개 만들 것이라 한다. 원 할머니는 매월 셋째 수요일 팔공산에 있는 중증장애인시설 선명요육원에 바느질 봉사를 나간다. 동촌종합사회복지관 바느질 봉사단원인 그는 봉사를 갈 때마다 자신이 만든 벙어리장갑과 오줌통 보자기를 갖다준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바느질 봉사를 갈 때면 바늘, 골무, 가위 등 도구도 꼭 챙겨 간다. 현지 봉사는 손수 바느질로 이불과 옷을 꿰매는 것부터 장애인 옷에 이름 새겨주기까지 다양하다.
원 할머니는 바느질 봉사자 20여 명 중 바느질 솜씨가 으뜸이다. 또 젊은 여성들이 어떻게 바느질을 해야 할지 잘 몰라 묻기라도 하면 자상하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원 할머니는 바느질 봉사를 마치면 다음번에 갖다줄 벙어리장갑과 오줌통 보자기를 만들 천을 챙겨 집에 온다. 원 할머니는 바느질 봉사를 하기 전에는 수성구 파동에 있는 장애영유아 복지시설인 애망원에도 4년가량 다니며 목욕봉사를 하기도 했다.
'항상 웃고 살자'가 생활신조인 원 할머니는 10대 후반에 결혼해 32세에 남편을 잃고 4남매를 혼자 키웠다. 지금도 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 아침밥은 물론 장보기, 세탁, 옷 만들기 등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원 할머니는 노인들의 건강 비결에 대해서도 한마디 던졌다. "귀찮지만 운동을 하라. 목욕을 하라. 먹는 것을 가려라. 무거운 것을 들지 마라.''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원 할머니는 다시 재봉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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