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그저께 사퇴했다. 형식은 '자진'(自進)이지만 내용은 타의(他意)에 의한 자의(自意)였다. 후보 지명 이후 사퇴까지 14일 동안 자퇴(自退)를 강요하는 타의가 집요하게 작용한 결과다. 이를 통해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한 번 찍히면 못 벗어난다'는 사실이다. 문 후보자는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란 교회 강연이 공개되면서 '친일'반민족'으로 찍혔다.
'찍혔다'는 표현을 쓴 것은 문제의 강연을 끝까지 들어보면 그를 사퇴로 몰고 간 '타의 세력'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제 식민지배를 합리화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일제 식민지배는 우리 민족을 더욱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 쯤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고비 고비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었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주신 것이다. 고난을 주신 다음에 이 민족을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는 강연 내용을 보면 분명해진다.
그런 점에서 '강연'은 그의 주장대로 교회 내에서 신앙인들을 대상으로 한 '신앙고백'으로 한정해 받아들이면 시비를 걸 '꺼리'가 못된다. 그의 기독교 사관이 비기독교인에게는 거슬리겠지만 어쨌든 '친일'반민족'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KBS는 '악마적 편집'으로 그를 '친일'반민족'으로 찍었다. KBS가 찍자 여론이 다시 찍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를 받아 또 찍었다. 그렇게 해서 그의 해명은 구차한 변명이 됐고, 그 자신은 총리 지명 6일 만에 사퇴한 안대희 씨와 달리 총리 자리에 연연하는 인물로까지 비하됐다.(기자도 강연 내용 전부를 보지 않고 그를 일방적으로 평가했다. 그 부박(浮薄)이 부끄럽다)
그렇다고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란 발언이 문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제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일제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천하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논리가 성립할 수밖에 없다.(남북 분단을 획책하고 민족상잔의 비극을 안긴 스탈린과 김일성도 마찬가지다) 이는 하나님을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 악(惡)을 행하는 분으로 만들고, 그 악이란 것도 선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선으로 귀결되는 모순에 빠지게 한다.
이런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희한한 결론에 이른다. 그를 찍은 세력들의 주장대로 일제의 식민지배는 불가피했을 뿐만 아니라 정당했다는 것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동원했던 '신의 뜻'이란 논리, 그리고 이를 베껴 아시아 국가에 대한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문명개화론'을 수긍하는 꼴이다. 아직도 일제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강변하는 일본 우익과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국내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쾌재를 부를 일이다.(그런 점에서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가 문 씨의 사퇴와 관련해 한국국민과 박근혜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한 것은 참으로 시사적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문 씨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에 대한 문 씨의 대답은 어떤 것일까. 물론 문 씨는 사퇴 전에 그 대답의 일단을 보여주긴 했다. 그러나 그는 일방적으로 자기 해명만 했을 뿐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주장이 타당한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는 열렸어야 했다. 그가 총리가 되고 안 되고는 그다음 문제다. 그러나 그를 친일'반민족으로 찍은 세력은 문창극의 실체는 이미 드러났으며 인사청문회까지 갈 것도 없다고 했다. 한심한 것은 이런 '묻지 마 이지메'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슬며시 올라탔다는 사실이다. 소신도 철학도 없는, 비겁한 '웰빙' 보수의 '커밍아웃'이었다.
인사청문회를 열었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기독교 사관과 비기독교 사관이 양립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총리는 기독교인의 총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총리다. 따라서 그의 기독교 사관이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없다면 어떻게 그런지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그가 총리로서 적격자인지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여도 야도 여론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성의 마비 징후를 읽는다면 과장일까? 문창극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 봐야 알 수 있는 때도 있다. 문창극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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