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쯤 한 친구의 영향으로 잠시 말러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의 음악보다 솔직히 말러를 둘러싼 세계에 더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네덜란드의 지휘자 하이팅크는 이렇게 말했다. "말러는 독을 품은 쾌락이므로 도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떠올리며 말러 교향곡 5번을 들어본다.
내가 갖고 있는 음반은 각각 빈 필하모닉의 번스타인(1987), 베를린 필하모닉의 카라얀(1973), 빈 필하모닉의 피에르 불레즈(1996)가 지휘하는 음반들이다. 오늘은 비교해서 들어보기로 한다.
곡의 도입부인 1악장은 죽음의 행진. 첫머리에 트럼펫의 군대풍 팡파르가 나온다. 말러가 악보에서 지시한 사항이라고 하지만 시작부터 놀랍다. 곡은 엄격하지만 격렬하다. 트리오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절망과 슬픔이 강력하게 휘몰아친다. 플루트가 연주하는 마지막 부분은 서늘함이 느껴진다. 말러는 빠르게, 열정적으로 난폭한 무엇인가를 원했던 것인가.
2악장은 한마디로 폭풍과도 같다. 말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악장에 사로잡히기 쉽다고 하지만 아직 적응을 못 하고 있는 중이다. 격렬함과 우울함이 동시에 느껴지지만 리듬을 놓치면 산만하게 들릴 수 있다. 3악장의 스케르초는 너무 빠르지 않으면서 활기차게 연주하는 부분이다. 말러의 음악에서 빠트릴 수 없는 랜틀러(오스트리아의 민속무곡)가 등장한다. 호른 독주가 곡 전체에서 활약하고 있어 호른 협주곡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삶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죽음 속에 존재한다"던 말러의 말이 떠오른다. 4악장은 '아다지에토'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에서도 바로 이 4악장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말러의 음악을 어떤 장면에 적절히 표현했는지 궁금해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기억이 떠오른다. 말러가 부인 알마에게 편지 대신 이 곡의 악보로 구애를 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알마 말러도 뛰어난 작곡가였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 5악장 피날레는 1악장 장송행진곡과 대비되는 느낌이다. 고통과 슬픔이 비극적이면서도 절묘한 기쁨으로 우회적으로 표현된다. 금관 코랄의 환희의 합창은 소란스러운 주변 배경에는 관심 없이 들떠 있다. 밝은 빛 속에 삶이 놓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세 연주자의 음반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불레즈의 연주를 좋아한다. 지휘자들이 말러를 어떻게 하면 격정적으로 연주할까 궁리한다는 말도 있지만 불레즈의 연주는 상대적으로 갈등 없이 편안하다. 번스타인의 연주와 비교한다면 둘은 극과 극이다. 베스트 음반으로 자주 소개되는 번스타인의 말러는 어두우면서 격렬하고 힘이 넘친다.
그런가 하면 번스타인과 달리 카라얀의 음반은 냉철한 음색을 지녔다. 말러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엇갈린다. 말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음색이 풍요롭고 섬세하다는 긍정적 평가도 많다. 말러 교향곡의 백미로 알려진 4악장 아다지에토 연주는 카라얀이 단연 압도적이라 생각한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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