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가 시작된 3월의 어느 날(1968년), 새로 사귄 친구와 공부가 끝나고 2층 교실 밑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 반 교실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그기 누가 있노!"
나는 얼른 나무 뒤에 숨었다. "그기 나무 뒤에 김창희, 창희 니 맞제! 빨리 교실로 올라와 봐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도 화끈거리고…. 어떻게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알까? 한 학년이 10반이나 되고 한 반에 80명이 넘는데 나 같은 애는 기억도 못 할 거라고(학년 초라서) 도망가 버릴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쭈뼛쭈뼛 교실로 올라갔다. 선생님 혼자서 새 교과서가 도착해서 한창 정리하고 계셨다.
"김창희 너 5학년 때 4반 했제. 너거 담임이 공부 잘한다고 칭찬하던데 6학년에서도 열심히 할 거지? 너거 요 앞 큰나무 윗집 아직도 그기 살고 있나?"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셨다.
부끄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얼굴만 빨개져 "예" 조그맣게 겨우 대답했다.
싱긋이 웃으시던 선생님께서 "이거 1반 교실에 가지고 가서 '무상지급교과서' 도장 찍어온나."
"아참, 새 교과서 신청했나."
"언지예."
"그럼 우짤라고."
"엄마하고 헌책방에 사러 갈라 캤심니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그해에도 새 교과서를 신청하지 못했다.
"그라믄 이거 다 찍어서 너도 한 부 가지고 가거라."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던 친구 2명도 불러서 끙끙거리며 1반 교실로 향했다.
"선생님예. 다 찍어 왔는데예."
검사를 하던 선생님이 "창희야, 이거는 도장이 안 찍혔는데, 빼묵었나. 다시 찍어 와야 되겠다."
미적미적 안 가고 선생님 눈치만 살피고 있으니까 "빨리 1반 선생님 집에 가시기 전에 갔다 온나."
"선생님예." 책을 정리하시던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셨다.
"지는예. 도장 찍힌 책은 안 할랍니더."
"와?"
"그냥예" 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한참을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더 묻지도 않고. "알았다. 그냥 가지고 가거라. 대신 다른 아이들한테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마래이."
새 교과서를 받으면 지나간 달력으로(달력 종이 질이 제일 좋았다) 책 꺼풀을 입혔다. 새 책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무상지급교과서' 도장을 감추기 위해서 달력 종이로 꺼풀을 입히는 것이었다. 무상지급교과서는 보훈 대상 자녀나 보육원 아이들에게 배부되는 것이었다. 어느 학년에서는 책이 모자라서 그들에게도 다 주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나의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많은 선생님들께서 전과나 수련장, 문제집 등을 주셔서 친구들이 부러워했고, 나는 한껏 우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교과서만큼은 '무상지급교과서' 도장이 찍혀서 나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리곤 했다.
책 꺼풀이 떨어져 '무상지급교과서' 도장이 보일까 봐 떨어지지 않게 사용한 나에게 선생님께서는 칭찬도 해주셨다. 책을 참 깨끗하게 사용한다고.
어제도 팽목항에 구명조끼도 안 입은 선생님 시신이 들어왔다고 신문에 났다. 더 묻지 않고 교과서를 주신 그때 그 선생님과 신문 속에서 웃고 계신 선생님 사진이 겹치면서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김창희(대구 수성구 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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