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빠의 지인이 아기 고양이를 데려왔다며 연락이 왔다. 낯선 환경에 겁먹은 채 침대 밑에 숨어서 웅크리고 있는 아기 고양이는 정말이지 작고 귀여웠다. 주변에 고양이와 함께 사는 가족이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인지 이후 얼마간 하루에 몇 번씩이고 연락이 왔다. 고양이 화장실은 어떤 게 좋은지, 캣타워는 살까 말까, 장난감은 뭐가 좋은지와 같은 고양이 일상용품에 관련된 질문부터 고양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질문 등 예전에 내가 처음 체셔를 맞이했을 때 느꼈던 의문들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양이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8년여간 고양이와 동고동락한 반려인인 만큼 그분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아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답변을 해줬다. 가끔 사료를 안 먹는 바람에 초보 반려인을 걱정시키기도 했던 그 아기 고양이는 무사히 새로운 집에 잘 적응했고, 이제 슬슬 '캣초딩'(활발하고 장난기 많은 아기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 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아기 고양이가 적응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처음 체셔를 데리고 왔을 때가 생각났다. 아기 고양이가 태어나면 털색은 각기 달라도 눈동자 색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에, 공통적으로 짙은 감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체셔의 경우엔 나와 만났을 때 이미 연녹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이미 4개월이 훌쩍 넘은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창 발랄하고 쑥쑥 크는 시기라는 2, 3개월령 체셔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체셔의 덩치 역시 생각보다는 꽤 컸다. 그러나 처음 맞이하는 반려묘의 나이나 덩치와는 별 상관없이 당시의 나 역시 첫 반려동물이었기에 오빠의 지인처럼 아직 굉장히 미숙한 초보 반려인이었다. 체셔를 위해 어떤 용품들을 사야 하는지 몰랐고, 녀석의 상태 하나하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체셔는 녀석의 큰 덩치만큼이나 어른스러워서, 자잘한 실수를 반복하던 내게 꽤 듬직한 반려동물이 되어주었고, 그 당시 주변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던 지인들이 이런저런 용품을 나누어 주고, 조언도 해 주었기에 순간순간마다 큰 고민이나 무리 없이 지나갔었다.
아기 체셔는 지금보다 호기심도 많고 장난기도 많았다. 암벽 등반을 하듯, 집 안에서 높은 곳이라면 죄다 올라가곤 했고, 장난감 하나만 있으면 한참을 놀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이라면 킁킁거리며 죄다 건드려보곤 했다. 이렇게 한껏 여기저기 헤집어보고 다니다가 지치면 내가 머물고 있는 책상 위에 뛰어 올라와서 자거나, 바닥 매트나 내 이불 위에 올라가서 잠을 청했다.
어렸던 체셔가 훌쩍 커버린 지금은, 웬만한 장난감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서 공을 굴려주면 마지못해 눈동자만 움직이는 공을 따라 또르르 굴릴 뿐이다. 그리고 네댓 차례 반복을 해야만 그제야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뛰어볼까? 하며 자세를 잡는다. 물론 그쯤 되면 이미 장난감은 앨리샤 차지가 돼버리기 일쑤지만 말이다. 장난감만 보면 즐거워라 뛰어다니는 활발한 두 살배기 앨리샤를 제쳐 두고,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중년 고양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는, 반려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던 오래전과 매한가지로 내게 조금 막막한 일이긴 하다.
이렇게 한때는 애교도 많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였던 체셔지만, 이제는 더 커진 덩치에, 얼굴에 나이 든 티도 제법 나는 중년의 고양이가 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아직도, 다른 어떤 아기 고양이들보다도 귀엽고 예쁘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러리라고 믿는다. 비록 반응도 시큰둥하고 애교도 줄었지만, 체셔의 얼굴 속엔 아직도 어릴 적 그 귀엽던 아기 체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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