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체육 교수들이 본 월드컵] 월드컵 안 볼 '자유' 응원하지 않을 '권리'

월드컵 시즌이다. 4년 만에 어김없이 또 돌아왔다. 2002년 한'일 대회 개최 후 K리그 활성화는 월드컵이 끝날 즈음 매번 빈 공약처럼 외쳐졌다가 또다시 잊혔다. 아마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또다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은 예전과 다른 몇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 첫째, 2002년 대회 이래 '자의식을 가진 존재'(Sentient being)들의 거대한 모임이었던 거리 단체 응원이 이번 월드컵부터는 자본에 의해 본격적으로 지배되었고, 소수의 행위자(Actor)에 의한 국가적 단체(State)의 장이 되어버렸다. 이른 시간 한 장소에 모여 응원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를 넘어서기도 하고, 공공기관에서 붉은색 저지를 입는 모습은 개인의 애국심이나 팬덤을 넘어서서 지난 12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응원의 많은 부분이 자본화 과정을 거친 결과물로 보인다.

붉은 악마 응원단은 대기업들과 철저히 결합하고 상호 이익을 취하는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응원 놀이터는 이미 기업들에 의해 미리 선점되었고 응원을 틈타 자사 촉진의 기회로 삼았으나, 기업의 이익이 크게 기대되지 않는 곳에는 지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둘째, 민족주의와 전체주의 이미지를 가졌던 우리 월드컵 문화가 조금씩 개인을 허용하고 다원화된 의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류 사회는 서서히 흐르는 강물과 같이 시간별로 변화하기보다는 전쟁과 같은 큰 사건을 통해 급변했다고 한다. 또한 한 국가의 국민이 대다수 유사한 생각을 할 경우 국가가 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보다는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이 있다. 우리 국민에게는 전쟁과 같은 상처를 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탓에 많은 국민이 월드컵 응원을 스스로 자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가 같은 시간에 모여 같은 옷을 입고 하나의 팀을 응원해야 하는 것에 다소간 지치기도 한 부분과도 연결되어, 소위 말하는 '월드컵 안 볼 자유'를 선택한 국민이 이전 월드컵과 비교하면 많이 증가한 것은 우리 사회가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국민통합을 이루는 점에서 그간 우리의 응원문화는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다름에 대해 무조건 배타적인 태도를 그간 취해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가 개체성에 대한 존중과 다양함의 공존을 바탕으로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의 증거라고 생각된다.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아이들에게 스포츠 활동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문학에 대한 이해, 예술에 대한 즐거움, 다양한 문화 활동의 경험 등과 어우러질 때 스포츠 활동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축구를 통해 우리 사회에 즐거움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중파 방송이 같은 경기를 놓고 시청률 경쟁을 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에게 피로감만 증가시킨다. 누군가는 축구를 응원하고, 영화를 감상하고,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다양함을 갖출 때 우리 사회가 월드컵 4강보다 더 큰 사회적 성숙함을 이루는 것이다. 과거 타지 생활 중에 어느 교수에게 자국 월드컵 개최의 흥분된 분위기를 물었는데 개최 자체를 잘 모르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다양함을 이해 못 한 내 좁음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바다만 바라보며 우는 아비의 모습을 안아줄 시민, 군대 보낸 자식이 걱정되는 어미를 다독일 시민, 정쟁에 여념 없는 정치권을 걱정하는 시민, 날씨에 농사를 걱정하는 시민, 야구를 즐기는 시민, 그리고 월드컵을 응원하는 시민이 다 우리의 다양하고 건강한 모습이다.

한준영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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