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열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민간에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지만 양반들이 전(傳)의 형태로 기록한 것들도 많다. 그리고 나라에서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웠던 정문(旌門)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참 열녀가 많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만약 국어시험에서 열녀 이야기에 대한 반응으로 "당시에는 여성들이 '열(烈)'의 덕목을 잘 지키며 살았다."라는 선지가 있다면 이것에 대한 정오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열녀들이 많았으니까 당연히 옳은 반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틀린 반응이다. 상을 준다는 것은 그 행위가 모범적이고 특출나기 때문이다. 즉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안 지키고 살았기 때문에 열의 덕목을 잘 지킨 열녀가 특출한 것이다. 모두가 열의 덕목을 잘 지키고 열녀로 산다면 열녀에게 굳이 상을 줄 이유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와 같은 논리가 적용되는 말 중에 우리가 가장 흔히 쓰는 말이 '불혹(不惑)의 나이'라는 것이다. 나이 40을 흔히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의미로 불혹이라고 한다. 이 말은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지학(志學)], 서른 살에 세상에 섰으며[이립(而立)],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불혹(不惑)],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지천명(知天命)],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이순(耳順)],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종심(從心)]"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서 따와 각각의 나이를 지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실을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개념 없기로 유명한 열다섯 살 중2들에게 학문에 뜻을 두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고, 갓 취직에 성공한 30대에게 세상에서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마흔에는 유혹에 쉽게 흔들리게 되고, 쉰 살에 인생의 고비를 만나면서 천명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된다. 예순이 되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명령에 대해 아랫사람들이 토를 다는 것이 모두 귀에 거슬리고, 일흔이 된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대부분 순리에 안 맞는다고들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과 같은 말은 공자와 같은 훌륭한 분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보통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성인이 성인인 이유는 보통 사람들하고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불혹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왜 허하고 쉽게 흔들리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불혹의 나이'라는 것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혹에 흔들리는 나이이며, 그런 속에서도 불혹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니까.
능인고 교사
댓글 많은 뉴스
한덕수 탄핵소추안 항의하는 與, 미소짓는 이재명…"역사적 한 장면"
불공정 자백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 자폭? [석민의News픽]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제2의 IMF 우려"
계엄 당일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복면 씌워 벙커로"
무릎 꿇은 이재명, 유가족 만나 "할 수 있는 최선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