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 프리즘] '고노 담화 검증' 꼼수, 남북 공조로 대처해야

한일관계를 다루는 외교문서 중에 '고노 담화'라는 게 있다. 1993년 일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로,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하여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시인한 문서이다. 이 문서에서 고노는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군 위안부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리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현재 고노 담화의 정신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번복하려는 세력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6월 20일 아베 정권은 고노 담화의 신뢰성을 훼손하려는 의도로 '검증작업'에 착수하여 그 결과를 보고서로 공개하였다. 그 보고서에는 1993년 고노 담화 작성과정뿐만 아니라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한 한국 측 대응,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베가 검증작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요지는 첫째, 위안소가 군 당국에 의해 설치됐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지만, 외교적 차원에서 한국을 배려하려고 한국 정부와의 조율을 거쳤다. 둘째,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시아여성기금 등을 만들어 충분히 보상하여 더는 노력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한일의 과거사 모두를 최종적으로 청산하여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한마디로 고노 담화 검증보고서는 보편적인 인권유린이면서 전쟁범죄로 규정되는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배의 책임을 은폐'축소'부정하려는 아베의 꼼수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베가 이 꼼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핵심은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는 뜻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로 한국과의 갈등을 고조시켜 북한과의 수교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싶은 의도로 해석된다. 즉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앞두고 북일 협정체결에서 유리한 협상을 이끌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다. 일본은 북한이 국가수교의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식민지배 사죄, 배상'보상 등을 값싼 조건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일본이 기대하는 식민지배 사죄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 수준일 것이고, 경제적 지원도 1965년 한일협정 타결할 때와 같이 무상'유상의 '경제협력방식'으로, 지원액수는 50억~100억달러 수준에서 멈추고 싶은 것이다. 최소한의 조건으로 북일 협정을 타결시키려면 북한의 기대치를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이 그동안 추진해온 위안부 등 일제 식민지배 청산 노력을 깎아내리고 무력화할 필요뿐만 아니라 고노 담화의 정신도 평가절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베의 꼼수를 국제사회에 폭로하고 그것을 멈추도록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이 패전 이후 국제사회를 향해 영구한 부전(不戰)과 군대 비무장을 약속한 '평화헌법'의 입법취지를 유지하도록 견제하는 일이다. '고노 담화 훼손'에 맞서 우리 정부는 위안부 강제동원 실태 백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이것을 제대로 만들어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한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국제공조가 필요하다. 미국 정부는 고노 담화가 계승되기를 촉구하고 있다. 중국 역시 고노 담화 검증을 비판하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높이기 위해 관련 사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역사 NGO 포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이미 일본과 중국의 시민단체들과 국제공조에 나선 바 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이다. 북한은 5월 29일 일본과의 스톡홀름 합의에도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해 비판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은 장단기적인 이해관계를 따져볼 때, 많은 경제지원을 받고 싶은 처지이기 때문에 식민지배 청산이라는 장기적인 이익을 포기하고 일본에 회유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부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북한이 위안부 등 식민지배 청산과제를 빠뜨린 1965년 한일협정의 문제점을 반복하지 않고 더 근본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북한에 더 이롭다는 것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남북공조에 나설 수 있도록 고위급회담 등 구체적인 방안을 시급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채진원/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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