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본질과 현상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 그리워 운다" 라고 시작되는 민요 '너영나영'이란 노랫가락이 있다. 이 구슬픈 노래를 생전의 어머니께서는 힘든 농사일을 하실 때마다 목마르면 물을 들이켜듯 자연스럽게 입에 달고 계셨다. 일찍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떠나신 후 농사일을 도맡아 하게 된 어머니께서는 곧잘, 근심이 적막하게 흘러가는 강 언덕에 질경이처럼 퍼져 앉으시곤 했다. 7월 장맛비에 억장 무너지듯 휩쓸려간 모래 강변의 땅콩밭뙈기를 바라보며 우시는 걸, 낙동강의 모래가 묻은 어린 나비 고무신 아이는 늘 글썽글썽 바라보곤 했었다. 흙 묻은 땅콩 포기를 툭툭 털어내듯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이렇게 당신의 마음에 묻은 한을 툭툭 털어내곤 하셨다.

지금 시(詩)를 쓰는 사람이 되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당시 보릿고개를 겪었던 세월 속에서 그 어떤 높은 가지를 나는 새인들 아침의 공복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이와 연관된, 조선 초기의 자연 철학자이며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리는 화담 서경덕의 일화를 돌아보게 된다. 500여 년 전 사람들은 개성의 3대 명물로 박연폭포, 서화담, 그리고 황진이를 꼽았다.

어느 날 아침 화담은 씻은 듯이 맑고 고운 새소리에 잠을 깼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급히 먹을 갈아 조명(鳥鳴)이라는 글씨를 단숨에 썼다. 한데 붓을 놓고 보니 글씨가 어쩐지 힘이 없어 보여 벽에 걸어놓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그때 마침 중국에서 온 사신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 글씨에 감탄하여 글씨를 자신에게 달라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사신에게 허락은 했으나 영 마음이 개운하질 않아 다시 보니 삐침 획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신이 밖에 나간 사이 삐침이 부실한 부분을 얼른 고쳐놓고 만족해하고 있었는데 다시 들어온 사신이 화를 내며 탄식을 했단다. "아침에 일어난 새는 배가 고파 힘없이 우는데 그 소리를 어찌 힘이 들어가게 다시 고쳤단 말이오." 그제야 화담은 참으로 중요한 새의 속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드러나 보이는 현상만으로 글씨를 쓴 것을 참으로 부끄럽게 여겼다 한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어 낸다는 것, 대상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건 서예뿐만 아니라 시를 짓는데도 가장 기본으로 삼아야 할 덕목이라 여겨진다. 춘치자명(春雉自鳴)이란 말이 있다. 봄철에 꿩이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누가 충동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 허물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온몸에 풀물이 배었는지, 보리 가시랭이가 가슴에 박혀 버렸는지, 누가 건드리지 않는데도 괜히 저 아침에 우는 새와도 같이 허기가, 허드레가, 허물이 스스로 울컥울컥 쏟아진다.

박숙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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