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축구대표팀 결산] <하> 4년 후 미래 설계

확 바꿔! '어게인 2002'를 위해

허탈한 성적표를 받아든 축구 대표팀이 30일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엿 세례' 수모를 당했다.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감동 스토리를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여론 무마 차원의 감독 교체나 대한축구협회의 사과 시늉만으로 끝난다면 4년 뒤에도 '예견된 실패'로 끝날 것이란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파벌 축구' 이제는 끊자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꿈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감독 인선 등 준비 과정에서부터 해외 전지훈련, 선수 선발'기용, 대한축구협회의 지원 등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축구 팬들 사이에 가장 공감을 얻는 실패 원인으로는 '의리 축구'가 꼽힌다. 한국 축구가 아직도 구시대적 '인맥 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홍명보의 아이들'이 아닌 손흥민'이근호'김신욱이 상대적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국내파와 해외파를 둘러싼 갈등은 물론 이전부터 존재했다.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 사임 후 밝혀진 기성용의 SNS 파문이 대표적이다. 홍명보 감독 역시 이 같은 '인맥' 덕분에 일찌감치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는 게 축구계의 공공연한 후문이기도 하다.

이런 악습을 끊으려면 '4강 신화'를 썼던 히딩크 감독처럼 유능한 외국인 감독의 영입만이 대안이라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전임 감독들의 사례에서 보듯, '파벌'에서 자유로운 외국인 감독이 아니고서는 뿌리깊은 제 식구 챙기기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자조 섞인 전망이다.

◆한국만의 색깔 만들어내야

한국 축구가 그 나름의 색깔을 낸 대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강한 체력을 앞세운 전방위 압박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드러났듯 한국 축구는 4년 전 남아공 대회 때보다 퇴보하고 말았다.

대표팀의 전술은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4-2-3-1에 머물렀다. 압박은 실종됐고, 특징 없는 세트피스 전술은 무디기만 했다. 체력 역시 상대를 압도하기에는 무리였고, 한국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정신력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찬스에서도 과감히 슈팅을 날리지 못할 정도의 '자신감 붕괴'였다.

이에 비해 조별리그를 통과한 강호들은 빠른 역습은 물론 수비'공격 진용의 창조적 재해석을 통해 한층 빠르고 역동적인 공격 축구 스타일로 승점을 쌓았다. 기본기 역시 한국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일대일 돌파, 골 결정력, 수비 조직력 등에서 '월드 클래스'와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결국 유소년 시절부터 철저한 기본기 습득은 물론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재능 있는 선수의 집중적 육성이 절실하다. 당장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축구 백년지대계'라는 관점에서 꾸준한 투자와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벨기에전에서 태극전사들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완패했다. 벨기에는 이른바 '황금세대'를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주역들에게 '황금세대'란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붙여줬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처참하게 침몰한 홍명보호의 주축이었다.

이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라도 과거에 안주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입증하는 사례다. 앞으로도 태극마크를 달 가능성이 여전히 큰 '홍명보의 아이들'이 스스로 겸허하게 반성하고, 자신의 한계를 깨트리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에다 이들을 실력 위주의 경쟁으로 선발하고, 육성해낼 지도자를 찾아낸다면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어게인 2002'의 기적을 쓸 수도 있다.

벨기에전 패배로 한국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외신들은 혹평을 쏟아냈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이 알제리전보다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페널티지역으로 달려가 넘어지는 것밖에 작전이 없어 보였다"고 꼬집었다. 또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이번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한 번도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러나 실망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는 4년은 한국 축구가 환골탈태하는 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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